어디 아픈 데는 없지?
'루게릭은 아니니까 그 검사는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아.' 근육에 전기를 흘려보내 신경 반응 속도를 측정하는 검사를 받을 때 담당 교수가 펠로우에게 한 말을 잊지 못한다. 말을 못 하고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지 않던 날 나는 길랑바레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워낙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보니 대학병원에서도 병명을 진단하기까지 많은 검사를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루게릭까지 의심했다니. 그 해 폐렴과 길랑 바레 증후군으로 병원 천장에 아들 얼굴 수없이 그리며 펑펑 울던 날 다시는 병원 문턱 넘지 말자 다짐했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려서 인간이지. 여전히 육아에 전념한 척 건강은 외면하고 살았다. 어느 날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운동과 단백질이 필요한 인간이 나였다.
강이 어린이집을, 겸이 학교를 입학하던 해 코로나가 일상을 무겁게 짓눌렀다. 당시 여든 하나셨던 시어머니는 6개월을 꼼짝 않고 집안에만 계셨다. 그런 어머님을 위해 우리도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지냈다. 돌밥에 간식 두 끼까지 부엌에서 나올 수 없던 날들. 명치와 소장 사이의 배가 계속 아파 밥을 먹지 못 함에도 불어나는 몸을 보며 그저 살이 좀 찌나 보다 생각했다. 친한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건강 챙기기 모임을 만들어 스쿼트며 실내 걷기등 홈트 하고 인증하기를 했지만 자궁이 탈출하려는 통증이 찾아와 관둬야 했다. 1년이 지나고 바깥 생활이 가능해질 때쯤 고질적으로 아프던 가운데 배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아마도 십이지장염일 테니 약을 먹어보란다. 약을 먹은 지 일주일 되는 날 살이 찐 것이 아니라 부종이었음을 알아차렸다. 불룩하게 나왔던 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훅 들어갔으니까. 부어있던 장기들이 제 얼굴을 되찾자 체중은 제자리로, 손발은 온기를 되찾았다.
건강을 챙겨야 했다. 수소문 끝에 동네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일주일 2번. 힘이 안 들어가 덜덜 덜덜 떨리는 내 다리가 부끄러웠다. 한 번은 대뇌피질과 끊어진 것처럼 다리가 조절이 되지 않아 하던 운동을 중단해야 하기도 했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코로나가 펜데믹을 담보로 내 남은 체력을 모두 다 가져가 버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했다. 운동을 한 날 만큼은 대충 먹지 않고 삶은 계란이라도 챙겨 먹으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플랭크 5분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초라한 내 모습을 견딘 보람이 있었다.
내가 필라테스에 빠져있는 동안 남편은 테니스를 배웠다. 같이 배우자는 말에 테니스 스커트가 입고 싶어 살짝 흔들렸지만 볕에 타는 얼굴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각자의 운동에 집중하며 1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필라테스 선생님의 수업 펑크가 잦아졌다. 당일 아침만 되면 어김없이 오는 메시지.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손해를 보며 관뒀다. 그리고 마침내 테니스 스커트를 입었다. 오늘부터 테린이 1일.
내 인생에는 터닝 포인트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운동. 사십 평생 '안돼, 나는 할 수 없어'라는 마음이 삶을 지배했는데, 운동으로 체력을 증량하고 우울을 감량했다.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니 빈 공간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브런치 작가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작은 공간에 생긴 자신감 덕분이다. 운동만큼 배신 없이 결과를 주는 것도 없다. 내가 한 만큼 튼튼한 체력과 가벼운 마음을 돌려준다. (멋진 포즈는 덤) 나는 아기를 키우느라 정신없는 엄마들이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아기를 유모차를 태우고 산책이라도 하면 좋겠다. 아기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체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음만 무거워지니까. 엄마가 건강해야 내 아이를 지키고 키울 수 있다. 내가 건강에 말라보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