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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Jan 03. 2024

물려주고 싶지 않은 유산

낮은 자존감을 나의 세대에서 끊어내기 위한 고민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다 들어온 날, 물어보기도 전에 털어놓기 바쁠 만큼 아들 겸은 기분이 언짢았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친구가, 일부러 자신을 지게 만들었다며 화냈다는 이야기였다. 겸은 활짝 펼친 손바닥을 단지 뒤통수로 가져가지 않았을 뿐이고 그 상태로 보를 냈다고 했다. 친구는 그래서 자신이 졌다고 우겼단다. 원래 가위바위보를 할 때는 손을 숨겼다가 내야 하는 거라고. 다시 하자는 말에, 질까 봐 거절했다는 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한 마디 꺼냈다.


"당황스러웠겠네. 그런데 너도 지기 싫었던 거잖아. 그 친구가 지기 싫은 만큼. 그럼 이해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냥 하자는 데로 한 번 더 해 줄 수 있는 거지."

겸은 지는 걸 누가 좋아하냐고 반문했다. 나는 그 친구나 너나 도긴개긴이라며 기분 나쁠 것도 없다고 나무랐다. 눈 주변이 시뻘게진 겸은 이내 눈물을 터트렸다.

"아니, 내가 속상했다는데 엄마는 내 편을 왜 안 들어주는 건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사실 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수치심이 폭발했다. 내 아들이 너그럽고 관대하고 수용할 수 있는 성인군자이길 바랐던 것이다. 기를 쓰고 이기려 한 겸을 보며 지질한 아들이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가 그 정도면 싸움 일으키지 않은 선에서 자신을 지키며 정당하게 의견을 이야기한 건데. 스스로를 성모 마리아라 여기고 아들을 예수님 정도로 키워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사실 이유는 이렇다. 무서운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해 나의 모든 욕구는 배제하고 제시된 조건적 가치에 굽신거리며 자라온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언쟁이 두려워 일단 고개를 숙이고 관계를 시작했다. 타인의 무례나 부당한 행동에 입 한 번 벙긋하지 못했고, 그런 나를 개탄스러워하다가 우울증까지 얻었다. 그런데 그토록 혐오하던 내 모습을 겸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삼성출판사 세계의 명화 _ 폴 고갱 황색의 그리스도

남들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처럼 끌어안고 공감하면서, 우주 저 넘어까지 사랑한다고 말하는 내 아이들에게는 왜 그러지 못할까? 나를 그토록 버겁게 만들던 엄마의 양육방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리숙하고 미숙했던 시절의 나를 아직도 사랑으로 끌어안지 못한데 이유가 있었다. 특히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스스로를 나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아이들이 친구들과 문제가 생길 때면 늘 수치심에 압도당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아직도 후회하고 부정하는, 낮은 자존감으로 기인하는 빈약한 자기애를 채워야 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사랑의 기술은 타인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이 만족스러울 때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그가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도록 대하면 된다. 물론 피상적인 칭찬은 되려 반감을 불러일으킬 테니, 구체적이고 의외의 면모를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조건일 테다. 그렇다면 자기애는 스스로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나르시시즘으로 번지지 않고 건강한 자기애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어제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서 해답을 찾았다. 친구는 기대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떤 상황도 우리에게 닥칠 수 있고 누구든지 우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어떻게 내게 일어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 차이에서 자기애가 결정된다고 했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스스로의 부정적인 면모와 감정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수록 세상의 부당함에 버티는 힘이 약해진다는 말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생각났다.


인간으로 존재하기에 나의 존엄성에도 절댓값을 씌울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내 삶 속에서 나의 순위는 언제나 0위로 우선되어야 한다. 좋고 나쁘고 잘났고 못났고 평가하고 검열할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생산되는 모든 생각과 감정들은 소중한 것이므로 존중할 수 있는데서 스스로에 대한 친절과 사랑이 시작될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물려주고 싶은 유산

자기애가 결여된 엄마가 물려주는 낮은 자존감을 나의 세대에서 끊어 낼 방법을 찾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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