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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Feb 25. 2022

존재 자체로도 미움받을 수 있다

아직도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나는 태생적으로 상냥하다. 아니, 상냥하도록 교육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스스로 생존 방법의 무기로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쁘지도 않은 얼굴에 도도하거나 불친절하면 완전한 외톨이가 될 것 같았다.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그런지 타인의 이목과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 거의 모든 심리학 서적이 '미움받을 용기를 내라',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라고 외치고 있어도 와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기에 모두 나를 좋아하며 좋게 평가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인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거절도 어려워하며 무례한 상대에게도 웃으며 대처하지 못했다. 바른 소리라도 상대가 언짢거나 기분이 상할 것이 두려워서였다.


이렇게 나는 타인을 신경 쓰며 배려심 많고 이타적인 사람임을 자신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회사 내에 퍼지기 시작한 것을 알게 되었다.


"과장님이 네가 그렇게 또라이냐고 물어보고 다니시던데?"


"팀장님이 너 이기적이고 일하기 싫어하는 것 맞냐고 물어보고 다니시던데?"


이런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배에게는 늘 깍듯했고 후배 일에는 항상 발 벗고 나서 도와주며 호평을 받아왔던 나에게는 하늘이 무너질 만큼 큰 충격이었다.  늘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왔는데 어떻게 이런 소문이 퍼질 수 있지.


소문의 출처를 찾아다니며 파고 파니, 옆자리 앉은 후배였다. 내가 자기 좋아하는 연어덮밥 한 그릇에 만 이천 원이나 하는 것을 몇 번이나 사주었고(내 험담하고 다니는 줄도 모르고 힘내라고 밥을 참 열심히도 사 먹였다.) 일이 힘들다고 하면 내가 더 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J주임이 너 때문에 애가 안 생긴다며 울고 다녀"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 후배는 채용전 어린이집에서 실습하다가 아이와 학부모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어 아이를 끔찍이도 싫어한다고. 나에게 딩크족이 된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했었다.


예전 뉴스 기사에 어떤 여경이 누군가 올린 투고로 감사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감사원에 거짓을 밀고 한 사람이 자신과 가장 친한 동료였다는 것을 알고 자살했다는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는 배신당했다고 자살할 것까지 있냐. 생각했거늘 소문의 진상을 안 후로 극심한 배신감에 휩싸여 그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는 그 후배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상을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따로 불러 왜 그런 소문을 내고 다녔냐고 캐물었다. 그 후배는 물건을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몹시 놀라는 듯하더니 '알아버렸으니 어쩔 수 없네'라는 듯 본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계장님은 착해서 업무분장도 다 받아줄 줄 알았는데 아니셨잖아요.


라고 한다. 착한 것과 호구는 다르지 않은가. '호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잖아'.라는 뜻인가. 후배가 힘들다기에 업무를 넘겨받았는데 너무 심하게 넘기길래


"이거 하나 정도는 네가 할 수 있지 않겠니"라고 했던 일이었다.


이어서 하는 말도 어처구니가 없다.


"계장님, 육아시간 쓸 때마다 짜증 나요."


매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코로나로 인해 급하게 하원할 때만 주 2회 1시간 일찍 퇴근했었다. 육아를 하는 워킹맘으로 사회가 인정하고 보장해 준 당연한 내 권리임에도 눈치를 그렇게 봐가며 피해를 안 주는 선에서 조심조심 사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성은 마비되고 머리가 하얘졌다. 고작 내뱉은 말이라고는


"내가 너한테 무얼 잘못했는데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라고 애처럼 울면서 말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시야가 흐려졌다. 멍한 정신으로 반박도 못하고 울고만 서있는 나의 어깨를 치고 자기 자리에 들어가 앉더니 큰소리로 말한다.


"내 자리 앞에서 언제까지 울 거예요? 좀! 비켜요! 선배님들 이 분 좀 치워주실래요" 이렇게 소리를 친다.


그렇게 하극상을 호되게 당하고 나는 3일 연속 꼬박 매일 소주 2병씩 마셨지만 단 1시간도 잠을 이 룰 수가 없었다. 화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가슴에 커다란 불덩이가 들어와 앉아 답답하고 죽을 것 같았다.


나중에 과장님들과 선배들에게 들은 험담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많이는 아니더라도 돈 벌어오는 남편이 있고 (그 후배 남편은 돈을 일정하게 벌어 오지 않는다고 한다)


둘째, 아이가 있고 (동료나 후배들에게는 딩크족이라 하며 멋있는 척하고, 상사들에게는 '일이 힘들어 불임이다. 일을 빼 달라'하고 다녔단다)


셋째, 내가 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 후배는 내가 발령받기 전 우리 부서에서 홍일점으로 대접받고 있었는데, 내가 상냥하고 친절하다 보니 도도하고 까칠한 그 후배가 관심에서 밀렸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질투였다.

30대 후반에 질투라니!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점철된 그 얼마나 미성숙한 감정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 모든 이유들은 그저 그냥 '나'를 둘러싼 하나의 배경이자 그냥 '나'였다.

대단한 환경도 아니고 아주 그냥 평범한 존재일 뿐인데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대상이 되다니


그리고 깨달았다. 그렇구나 그저 나의 존재. 그냥 나. 그 자체로도 미움받을 수 있구나.


남편이 있어서. 아이가 있어서. 나보다 예뻐서. 나보다 인기가 많아서부터 시작해 전 여자 친구랑 닮아서. 비염 섞인 말투가 듣기 싫어서. 머리가 짧아서와 같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이유로의 존재 자체가 미움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이에게 최선을 다 한다고 해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아무 피해도 주지 않았음에도 아무 짓도 안 했는데도.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았지만(남친과 이별한 경험 보다 더 아팠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크게 성장한 면은 있다.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타인의 평가 따위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으며 미움받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상처도 받지 않게 되었다.


장작불에 데어 봤다. 성냥불 정도는 뜨겁지도 않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데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건 그 사람 내부에서 타인이 가진 것과 싸우고 있는 중일 테니깐. 미워하고 있는 사람만 손해다.


자신의 열등감으로 본인만 괴로울 뿐이고 그 사람의 그릇이 그 정도이니.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에 초연해 지자.


잘못된 소문과 오해는 나를 알던 사람들과 나를 겪은 사람들에 의해서 자연히 풀어졌고, 악의적인 소문을 내고 다니던 그 친구 입장만 이상해졌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를 안다. 그래서 일일이 찾아다니며 해명할 필요도 없었다. 진짜 내 사람들에게만 에너지를 집중하게 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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