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벚꽃길에서
1.
벚꽃은 항상 나보다 높은 곳에서 피었다. 나는 벚꽃을 보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벚꽃이 가득 고여 있었다.
2,
벚꽃과 동갑인 아이가 물었다.
“이 나이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나는 벚꽃을 한 번 올려다보고 대답했다.
“그냥 피어있으면 되지 뭘.”
3.
열대어를 원래 있던 환경보다 따뜻한 물에서 기르면 성장이 30% 빨라진다. 그러나 수명은 15% 줄어든다고 한다. 빠른 성장이 생명에 부담을 준 것이다. 이르거나 느리게 피는 꽃은 없다. 제 때 피는 꽃 뿐이다. 그러다 결국 지고 마는 벚꽃이지만 누구도 벚꽃이 지기 위해 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벚꽃은 제 때 피니까 필 뿐이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섯불리 만들곤 한다. 눈꺼풀이 눈물을 잠근다고 해서 우리가 울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길이 언젠가는 끝난다고 해서 우리가 막다른 길에 다다르기 위해 걷는 것은 아니다. 어느새 저녁이었다. 어둑해지는 하늘을 벚꽃이 비추고 있었다. 나는 벚꽃이 피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저녁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
물은 항상 나보다 낮은 곳에서 흘렀다. 나는 저녁을 가득 머금은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손톱같은 벚꽃잎 한 무더기가 모여 섬을 만들고 있었다. 그 섬에 느리게 크는 열대어가 산다. 벚나무의 한 생애를 모두 지켜보겠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