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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가주 Oct 26. 2022

무언가가 되어 간다는 것

우리는 여전히 비커밍 중


내게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어딘가에 다다르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진화하는 방법,  나은 자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이다.  여정에는 끝이 없다.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하나의 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이다. 인내와 수고가   필요하다.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앞으로도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언제까지나 버리지 않는 것이다.”

<비커밍, p554>     




올해 6학년이  딸의 꿈은 지금까지 대여섯  정도 바뀐  같다. 발레리나에서 시작해 파티쉬에, 경찰, 그림책 작가, 캐릭터 디자이너, 식물 그리는 화가 지금은 시나리오 작가까지(바로 며칠  갑자기 바뀌었다!). 딸의 관심사에 따라 당연히 꿈도 변해갔다. 딸이 스스로 자기의 미래를 상상하며 꿈을 꾼다는 것이 엄마인 나로서는 대견하기에 ‘그래,   있어!’하며 그때마다 격하게 응원해준다.     


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에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던 나는 부모님이 하라는 데로 모범생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오랫동안 아빠의 꿈은 내가 의사가 되는 것이었고, 나는 내 꿈은 의사야!라고 속으로 세뇌 아닌 세뇌를 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정해진 꿈을 위해 살았다. 그러던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과제로 내주신 작곡 숙제로 꿈이 바뀌어 버렸다. 집에서 피아노로 뚱땅거리며 쳐서 만든 곡이 뽑혀서 학교 축제 때 무대 위에서 공연곡으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음악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작곡 공부할 생각 없니?”라고 물어보셨다. 가슴이 쿵쾅쿵쾅거렸던 그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곡이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이 너무 흥분되고 좋았다. 나의 소박하고도 웅장했던 꿈은 부모님의 반대로 바로 좌절되었지만(그렇다고 의대에 간 건 아니다) 아직도 나에게 ‘음악인’의 피가 흐르고 있진 않은지 혼자 상상하며 씩 웃는다.

내가 그때 작곡을 공부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꿈이 단지 꿈으로 머물러있지 않기 위해,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았어야 했을까. 지금의  모습은 그냥  아이의 엄마, 흰머리가 삐죽 나오는 평범한 40 주부일 뿐이니. 결혼 전에도 그랬지만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무엇을 배우려는 욕구가 멈추지 않았다. 딸을 낳고는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그림책 공부를 하고, 영어 그림책에 눈을  원서를 수입해서 온라인에서 판매도 했다. 큰돈을  욕심에 시작한  아니지만 마냥 내가 좋아한다고 무슨 일을 벌이기에는 가족들의 눈치를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어리니 엄마의 자기 계발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도 사치였다.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것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나를 두고 가족들은 말한다.


  한다고?”


나는 왜 이렇게 끊임없이 무엇을 하려고 할까. 공부에는 끝이 없다지만 이젠 무언가 열매를 맺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하며 자책하는 순간이 있다. 학창 시절에 시작도 하지 못했던 내 꿈에 대한 아쉬움과 자책 때문에 무언가 자꾸 도전하는 걸까.

무언가 되지 않은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실 무엇을 배우는 것은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되도록이면 가정경제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이면 좋겠지만 또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오로지 나를 위해, 내가 원해서 하는 공부란 어떤 것일까.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좋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사실 미래에 내가 무엇이 될지, 뭘 원하는지 이 나이에도 아직 모르겠다. 막연하게도 책 읽고 글 쓰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멋진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지만 언제 그 꿈을 이루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부로 10년을 넘게 지내며 계속 '나의 일'에 대해,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좌절하고 애쓴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헛된 시간은 아녔다고 믿고 싶다. 차 곡차고 쌓아나가는 과정, 나는 지금 무언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큰 목표나 결과보다는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나를 위로한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매진하는 삶도 좋지만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삶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대충 사는 게 아니라 '인내와 수고'가 필요한 삶,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쓰며 살고 싶다.


딸도 나와 함께 애쓰며 살아가기를.

우린 여전히 비커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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