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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가주 Oct 15. 2022

금빛 들판으로 들어갈 용기

오리건의 여행


 오리건과 인기 광대 듀크는 ‘스타 서커스단에서 나와 오리건이 바라는 아름다운 가문비나무 숲을 향해 길을 떠난다. 검게 그을린 도시 피츠버그의 공기를 뒤로한  무거운 짐과 주머니를  늘어지게 하는 열쇠 꾸러미는 두고서. 가지고 있는 돈은 바닥이 나지만  여행길에서의 그들은 행복하다. 오리건과의 약속 때문에 길을 나선 듀크였지만 ‘혹시 나도 그곳에서 백설공주를 만나게 될지라는 기대를 품는다. 각자가 바라는 바는 같지 않지만 동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고흐의 그림 같은 들판에서 하나가 된다.     




“붉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나는 반 고흐의 그림 같은 들판을 헤치고 나아갔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지요.”     



오리건의 어깨에 앉아서 앞을 바라보고 있는 듀크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금빛 들판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며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미지의 세상으로의 도전은 이제  이상 그들에게 두렵지 않다. 우박이 내리면 맞고, 옥수수밭에서는 잔치를 벌이며, 보드라운 풀밭에서는 꾸벅꾸벅 졸며, 강물은 커다란 욕조가 된다.     


 세상이 우리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그들의 것이  순간 꿈속에서 보았던 숲은  이상 꿈이 아니다. 오리건은  발자국도  가서 갇혀 지낸 나날을 모두 잊은   발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듀크는 오리건을 숲에 데려다주고 결심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떠나기로.


듀크는 자신을 규정했던 빨강 코를 떼어내고 걸어간다. 인기 광대로 살았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삶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살다 보면 익숙한  모습을 던지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이런 사람이야.’라는 내가 규정한 모습을 쉽게 던져버리지 못한  작은  안에서 쳇바퀴 돌  삶을 살아간다. 어떤 책에서 삶을 다시 ‘새로고침하려면 주어진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주어진 환경을 바꾸기란 쉽지 않지만 듀크처럼  밖으로  발자국 내딜 용기만 있다면 오리건의 커다란 숲은  것이  수도 있다.     


결혼 초기 부부싸움 끝에 딸아이를 데리고 제주도에  적이 있다. 렌터카를 빌려 딸을 옆자리에 태우고 두려운 마음으로 숙소를 찾아가던 길, 갑자기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해가  무렵의 바다는 마치 듀크가 고흐의 들판을 만난  같은 순간이었으리라.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세상이 끝날  같은 아픔과 왠지 모를 희망이 동시에 느껴지던 그때, 나를 쥐고 있던 속박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느꼈다. 그때 내게 붙어있던 빨강 코는 여전히 지금도 그대로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떠난 듀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듀크가 가는 길이 울퉁불퉁하고 가파른 길이라도 그는 어디에서든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다. 예전의 그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는 점점 단단해질 것이다.


 걸음 내딛는  몸과 마음을 기억하고 있는 듀크의 홀로 여행길을 나도 따라가고 싶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고 절망하는 순간에도 나에겐 끝없이 펼쳐진 ‘금빛 들판으로 들어갈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은  몸에 붙은 ‘빨강 코’를 떼어버릴  있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듀크의 여행 계속 이어지기를, 더불어 나의 여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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