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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가주 Oct 14. 2022

한 걸음씩 산책길.

매일 걷는 사람이 되기를

 혼자 하는 산책을 좋아한다. 집 앞에 있던 산에 홀로 올라가는 것은 두려웠지만 화가 나거나 가슴이 쿵쾅거릴 때는 조용히 홀로 산에 올랐다. 비교적 길이 평평했기 때문에 헉헉 소리를 내지 않고도 무난하게 산 중턱까지는 오르곤 했다. 올라가며 나무와 꽃들과 지저귀는 새들과 빠르게 지나가는 청설모들과 이름 모르는 풀꽃들을 보며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져 내려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차가운 냇물에 손을 담그면 몽롱했던 정신이 바로 서는 느낌이 들었다.


 꼭 화가 치밀 때가 아니더라도 혼자 걷는 산책길은 언제나 좋았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며 돌아오는 길에 빵 냄새가 솔솔 나는 가게를 그냥 못 지나치고 언제나 들어가서 크루아상과 딸기 바게트를 사 들고 걸었던 길을 사랑했다. 바람은 적당히 선선하고 내 손엔 빵 봉지가 들려있고 집에 가서 커피 한잔을 내려 빵과 함께 하는 책 모닝에 괜히 기분이 좋았던 그때가 생각났다.  


 조금 더 힘이 날 때면 아파트 입구에 있는 도서관에 들어가 읽고 싶었던 책을 검색해서 한 아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집 근처가 한적한 동네였던지라 산과 도서관, 작은 슈퍼, 작은 빵 가게, 커피집이 다였지만 그 짧은 산책길은 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좋았다. 어쩌다 아들의 손을 잡고 걷다 보면 내 걸음의 속도보다 두 배 세배 시간이 더 걸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간이 추억이 되어 한없이 그리워진다.     

 

 이곳 캘리포니아에서도 늘 가는 산책길이 있다. 한국 우리 동네의 분위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앞산도 없고 지나가다가 들리는 작은 빵집도, 슈퍼도, 도서관도 없다. 그저 커다란 도로 양쪽으로 큰 잔디가 깔린 공원이 전부다. 혼자 나가는 산책 시간도 별로 없다. 처음엔 두려움 때문에 지금은 아이들의 운동 때문에 늘 가족과 함께한다. 때로 답답하고 힘들 때는 저녁을 후다닥 먹고 운동화를 신고 씩씩하게 성큼성큼 혼자 산책길을 떠나기도 한다. 조마조마한 마음과 약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서.


 그래도 나는 앞으로 나간다. 오늘은 여기 까지지만, 내일은 조금 더 걸어 나가 본다. 주변에는 한국말로 인사를 나눌 이웃이 없지만, 이제는 서로 마주치면 웃으며 ‘하이’라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넨다. 잔디밭을 뱅뱅 돌고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가들을 보며 이곳이 이제 나의 동네라는 것을 느낀다. 나는 걸으며 내가 살아온 그곳을 떠올리지만 이제는 여기가 나의 동네다. 하나 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푸른 잔디와 파란 하늘과 쨍한 햇볕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내일도 모레도 산책을 하리라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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