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목 작가님, <구름나무수호신> 구매 일기
"그림이 세희님을 닮았어요. 꼭 세희님 공간에 걸어두세요."
컬렉팅을 고민할 때 곁에 있는 분이 해 준 말이다.
서른이 되어도 변하는 건 많지 않을 걸 안다. 그래도 스물아홉이라는 핑계로 뭐든 해서, 삶을 더 좋은 방향성으로 바꾸고 싶다. 계단식 성장이라면, 한 계단을 훌쩍 뛰어넘는 한 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더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스물아홉에는 뭐든 할 거야, 올해는 변화의 해가 될 것 같아." 내가 하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건 나니까 일부러 더 그랬다.
그 뭐든 중 하나로 컬렉팅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와닿는 그림을 자신의 공간에 걸어두고, 그림과 함께 살아가는 멋진 컬렉터가 되고 싶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넣어두면,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여러 정보 조각들을 만나서 더 명확하고 뚜렷해진다. (물론 점점 희미해지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컬렉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들어오니, 작품 너머의 작가의 이야기와 가격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냥 가끔 전시에 가서 기분을 전환하던 관람객의 시점과는 다른 관점이었다. 그리고 컬렉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명확한 행동으로 발현이 됐다.
지인의 초대를 받아, 부산의 카린 갤러리를 방문했다. 강목 작가의 '목성(JUPITER)'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분이라 그림체가 눈에 익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빛나는 눈동자,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낙서들이 그림을 더 생동감 있게 했다.
갤러리에 방문할 때만 해도, 그림을 사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그냥 감사하게도 초대해 주셨으니 가서 작품도 보고 준비된 간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사람들과 교류하자는 정도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계속 계속 보고 싶은 그림이 하나 있었다.
강목 작가의 수호신 시리즈 중 구름나무수호신 그림이었다. 구름 모양의 캐릭터가 자꾸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다. 포실포실한 머리를 하고, 게구진 표정으로 계속 나랑 눈이 마주쳤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 그렸다는 그림의 스토리도 마음에 쏙 들었다.
거대한 공간이 없어도, 쉽게 걸 수 있고,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그림이었다. 이사를 해서 낯선 공간에 적응하게 될 때, 이 그림을 걸어두면 공간을 따뜻하게 채워서 '내 집'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 줄 것 같았다. 같이 간 분은 아이가 있었다면, 정말 수호신처럼 아이 방의 머리맡에 걸어두었을 거라고 했다.
작가님께 작품에 대한 설명도 듣고, 같이 사진도 찍고 돌아가려 할 즈음까지 수십 번은 그림을 본 것 같다. 갤러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림을 보고 구매를 결정했다. 같이 간 분들이 첫 컬렉팅 과정을 구경 오겠다면서 우르르 따라왔다. 나보다 더 설레하는 사람들 덕분에, 덩달아 나도 도파민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구매는 하고 싶지 않아, 하루 정도 홀드를 요청했다.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까지 그림 사진을 보면서 두어 번 더 고민해도 구매해야겠다는 마음이 바뀌지 않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그림을 만난 다음 날, 전달받은 계좌로 비용을 보내서 첫 작품을 구매했다.
그림은 잘 포장이 되어서, 카린 갤러리의 인증서와 함께 배송되었다. 오래 보고, 좋은 컨디션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곧 액자를 맞추러 갈 예정이다.
첫 컬렉팅의 소감은,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만나는 일은 인연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 예상하기 어렵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빨리 첫 그림을 구매할 줄은 몰랐다. 계획에 없던 지출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하루의 마무리에 그림을 보면, 왠지 방과 마음이 따스한 기운으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좋아하는 그림을 만나고, 같이 살아보고, 더 좋은 곳에 보내기도 하며 취향의 깊이를 더하고, 일상의 밀도를 높이는 행복한 경험을 계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