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 미술관에서
언젠가 내 반려 그림을 사서 공간에 걸어두고 싶다. 집에 오고 싶어지는, 그 그림에 걸맞게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싶어지는 그림을 찾고 있다.
그러다가 최근에 김현식 작가의 그림을 봤다. 노란 표면 뒤로 주황색 색들이 비쳤다. 레진으로 여러 번 덧대서 그림에 깊이감을 더하는 방식이다.
먼저 노란색이 마음을 따뜻하게 채우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안에서 다정한 주황빛이 미어져 나왔다. 그럼 누군가의 마음속 여린 부분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혼자 있었다면 내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상상을 하면서 더 오래 바라봤을 것 같다.
그렇게 추상화의 세계로 입문해 버렸다.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저 간단한 점선면의 조합에서 뭔가를 굳이 찾으려는 사람들이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는 추상화를 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정해진 답이 없는 풍경 앞에 서서, 나를 그림에 투영하고, 내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느끼는 거다. 그래서 나에게 추상화를 감상하는 일은 일종의 명상 같다.
어제는 환기 미술관을 다녀왔다. 차분한데 다정한 색들, 그 위에 강렬한 빨강과 초록의 점과 선이 찍혀 있었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네모난 틀 안에 점을 찍은 문양이 반복되었다. 생물 시간에 본 식물의 세포를 연상시켰다. 무수히 반복되는 패턴이 와글와글한 사람들 혹은 생각들 같기도 했다. 수없는 반복을 통해 그림을 그려냈을 화가의 모습이 떠올라 그 마음에 이입해 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서진 동자승의 얼굴 조각과 그 뒤에 노란 패턴의 그림이었다. 햇살 같은 노란색의 그림은 너무 평화로웠고, 상단부의 분홍색의 세모진 영역은 따뜻하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의 색 같았다. 겹겹이 쌓인 생각들을 걷어내고 내 마음의 심연을 마주하는 기분으로 그림을 봤다.
앞으로도 종종 그림을 보러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정리되고, 깊어지는 기분이 꽤나 좋았다.
그러다가 정말 내 집에 걸어두고 오래 보고 싶은 그림을 만나고 싶다. 내가 첫 번째로 컬렉팅 할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이 걸릴 장소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