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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아끼는 베개를 내어 주는 마음

부모님이 제일 설렌 첫 독립

by 귤껍질 Mar 09. 2025

"딸 시집보내는 것 같다." 이사 가는 날 아침, 엄마가 아주 여러 번 한 말이다. 정작 나는 국내, 해외를 쏘다니며 짐을 수도 없이 싸봤으니,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맹그로브에 입주하는 과정은 심플했다. 트렁크 세 개와 옷걸이, 신발, 이불까지 가득 싣고 천안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광덕산에서 묻혀 온 낙엽이나 흙들이 옷에 붙은 채 신축 맹그로브 앞에 섰다. 아침에 일어나서 얼레벌레 준비를 하고 나온 우리 가족의 모습은 막 상경한 사람들 같았다.




입주는커녕, 입구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입주민들을 위한 출입문은 정면이 아닌 측면에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채널톡으로 물어가며 셀프 체크인을 했다. "주차장을 못 찾겠어요" 하면, " 감탄애라는 식당 안보이시나요? 그 앞입니다. “ 라며 답변이 왔다. 전달 준 안내 문자와 채널톡을 번갈아 보면서, 미니언즈처럼 기웃거리는 가족들을 챙기면서 정신없이 입주를 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답답하고 혼란해하며 한참을 헤매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이 절로 공감이 되었다.


그래도 무사히 주차를 하고, 1시간 주차 무료 쿠폰까지 사용했다. 그리고 씩씩하게 "그래도 웰컴 키트는 우아하게 수령하고 싶어."라며 트렁크 하나만 챙겨서 먼저 들어갔다 오겠다고 했다. 체크인 과정이 궁금하다며 동생이 따라왔다. 곧이어 엄마도 따라와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다. 동생이 엄마에게 "지금 그 행동 우아하지 않아. 품위를 지켜야 해"라며 장난을 쳤다. 차에서 나머지 짐을 꺼내고 있던 아빠는 엄마에게 "우리가 부끄러운가 봐. 그럴 수 있어."라며 작게 속삭였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짐을 방에 모두 넣어두고 나서, 미니언즈 군단들에게 층별 시설을 간략하게 보여줬다. 비교적 체통을 지키는 아빠와 달리, 엄마와 동생은 우와를 난발하며, 젊은이들이 사는 트렌디한 공간에 감탄했다.




그리고 숙소 앞 백숙집에서 기념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좋은 이불과 베개 세트만 있으면 완벽하겠어. 특히 그 배게 말고 통통한 게 좋아" 하니, 엄마가 "내가 제일 아끼는 거 빨아서 준 건데, 나는 그게 제일 좋아." 하며 토끼눈을 떴다. 그리고 "열 번 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잔 사람은 없어."라고 쐐기를 박았다. 분명히 더 예쁜 게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두 달만 쓰는 거고 엄마의 반응 덕분에 애착이 생겨서 일단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백숙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서, 부모님은 엄마의 생일을 기념해 속초로 여행을 떠났다. 트렁크에 있는 짐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두 어 시간이 흘렀다. 정돈된 짐을 보는데 마음이 가뿐해졌다.


가족들이 우수수 함께한 건 오랜만이었다. 다들 천안으로 서울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어 각자의 삶을 살았다. 혼자 했으면 그저 고생스러웠을 입주가 재밌는 에피소드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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