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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집에서의 일주일

비우는 것의 기쁨과 희열

by 귤껍질 Mar 05. 2025

이삿짐을 1주일 먼저 빼면서, 텅 빈 집에서 혼자 5일을 보냈다. 이삿날 전에 짐을 정리하고, 다음 주에 맹그로브에 입주할 때 들고 갈 짐만 추렸다. 그렇게 각기 사이즈가 다른 트렁크 3개, 신발 3개 (절대 포기 못하는 롱부츠, 숏부츠와 운동화) 로션과 가방 두어 개와 함께 텅 빈 집에 남겨졌다. 강제 미니멀리즘 체험이 시작됬다.

안방 풍경안방 풍경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에서 나의 취향이 아닌 것도 우수수 담게 된다. 때로는 나에게 맞지 않는 부분을 덜어내고 삶을 스스로에게 최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공간과 관련해서도 최근에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라는 책을 구매해서 읽기도 했다. 사는 것만큼 비우는 것에도 기쁨과 희열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체험해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월말 이사는 훨씬 비싸요. 차라리 그전 주는 어때요? 일요일에.”라는 제안에, 서울집에는 어차피 나뿐이니 일찍 짐을 정리하자며 부모님이 오케이 한 거다.


휑뎅그러니 모든 게 비워진 집을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내며 "나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있어,," 하니, 친구가 "역시 평범하지 않아"라며 웃었다.




텅 빈 집은 일단 아주 커 보였다. 시야가 시원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울렸다. 내 목소리는 가구들, 짐들에 부딪혀 산란되지 않고, 뚜렷한 메아리가 되어 울렁울렁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보다 없어서 아쉬운 물건은 없었다. 트렁크에 싸둔 옷은 한 주를 보내기에 차고 넘쳤다. 심지어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도 잠은 솔솔 잘 왔다.


텅 빈 집에서의 불편거리들을 왕창 토로할 예정이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오히려 삶이 심플해진 느낌이었다. 아쉬운 건 책상도 없어졌다는 것 정도. 배게 위에 노트북을 올려서 작업해야 하는 것만 불편했다.




삶에서 없으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 이유가 있어서 사모았던 모든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없어도 될 것들이었다.


이런저런 고민들이 많은데 이 중 의미 있는 질문들을 선별하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환경이 바뀌고, 많은 짐들 중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정리됐다.


비슷하게, 머리속 고민들을 정리할 계기가 와서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잘 덜어내고, 몰입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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