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귤껍질 편지
현대어를 가장 잘 쓰는 사람, 이라고 누군가 이슬아 작가님을 표현했어요. 솔직하고 직설적인데, 우아해서 싫지 않아요.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지만, 그 말 끝이 나를 상처 내는 게 아니라 안아줄 거라는 믿음이 가요. 아프게 남겨진 사람이 없는 글이라는 것, 그게 제가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 같아요.
이번 주는 좋은 영화와 책을 많이 봤고, 관련해 대화도 풍부하게 나눴어요.
ch1. 어떤 것이 나를 창작자로 살게 하는가
영화 ‘패터슨’을 보고 나눈 대화 주제예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하루들을 담은 영화예요. 크게 달라지지 않는 매일의 삶도, 섬세하고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면 시가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슴슴한 일상도 음미할 수 있는 예민함 미각을 가지고 싶어 져요.
어쩔 수 없이 창작하게 되었던 때가 언제인가, 로 바꾸면 좀 더 뾰족한 답이 될 것 같아요. 세상을 내 방식대로 경험하고 싶고, 내 내면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쌓이다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게 창작인 거 같거든요.
제 창작의 동력은 처음에는 분노 표출이었고, 다음에는 일과 삶에서 원하는 것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서였어요. 요즘에는 삶을 밀도를 높이고 싶어서 써요. 특히 예술적인 경험들, 일상을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면서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함을 느끼기 위해, 계속 자신을 내어 놓아야 하는 사람들, 그 과정에서 존재가 깊어지고 창작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창작자로서 계속 살아가는 것 같아요.
아래는 철에 옻칠을 한 작품이에요. 색을 여러 겹 깔고 문질러 벗겨내면서 무늬를 만들었다고 하셨어요. 옻독과의 사투, 옻이라는 예민한 소재를 다루는 어려움을 토로해 주셨어요. 재료의 까칠함이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어요.
ch2. 감각하게 하는 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라는 책을 읽고, 간접 경험이 때론 더 강렬하다는 걸 알았어요. 같은 장면을 직접 봤을 때 감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알려주면서, 예술은, 산다는 건 이렇게 온갖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니 세상을 향해 오감을 열어보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쓰고 싶던 글이 이런 글인 것 같다, 는 생각을 했어요. 동시에, 그런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을 때쯤에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 같아 무섭기도 했어요. 세상에 깊이 공감하는 만큼 쉽게 소진되고 지칠까 봐서요.
요즘은 마음이 복잡한데요. 그러다 보니, 익숙한 삶의 영역 밖의 것들에게는 심드렁하고 담백하게 일관하고, 주식과 부동산 같은 숫자적인 것들로 삶을 단순하게 보는 게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뭐든 무조건 나쁜 건 없으니까, 어느 쪽이 더 나에게 맞는 삶일지 생각해요.
ch3. 공간이 불러온 마음
이번 주는 신촌역과 강남역 부근을 자주 갔어요. 각각 학창 시절을 보낸 곳, 정말 힘들었던 첫 직장이 위치한 곳이에요. 전자는 저를 안아주는 느낌,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돌아올 자리를 마련해 둔 느낌이에요. 거리에 가득한 활기를 흡수하면서, 앞으로 세차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강남역과 역삼역 사이를 걷는 걸음걸이는 평소보다 더 명확하고 당당해져요. 전 직장 사람을 만나면 싫은 사람은 차갑게 슥 보고 말고, 반가운 얼굴은 꼭 인사해야지 혼자 생각해요. 핸드폰에서 시선을 거두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웃음기 없는 표정을 보면서 옛날 제 모습을 찾아요. 지킬 품위가 없는 사람이 줬던 상처들을 떠올려요. 이때의 분노가 제가 첫 글을 쓰게 한 동력이었어요. 온전히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는 생각을 해요.
ch4. 누군가의 자소서
대외활동 운영을 위해, 제출한 자소서들을 보면서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의 다양한 흔적을 만났어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날것의 자신을 그대로 저에게 던지는 느낌은 당황스럽고요. 어떤 사람의 진지하고 성실한 기록이 담긴 자소서를 보고 높은 점수를 준 뒤, 포트폴리오에서 일관되게 이어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 사람이 가져올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고, 괜찮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생기는 느낌이 들어서요.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표현들 중, 자소서라는 영역에 활용될 수 있는 공적 단어들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생각해요.
차라리 브런치 글 같은 에세이가,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도 하면서 비슷하면서도 수십 갈래로 달라지는 글들을 읽었어요. 한정된 단어로 나의 개성을 담아내는 그 어려운 일을, 저도 이분들도 살면서 몇 차례는 더 해야 하겠죠.
잠을 잘 자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생각도, 감정도 훨씬 많이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마음의 용량이 훨씬 큰 사람이 되길, 그래서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라면서 좋은 루틴을 만들어가요.
인스타그램에 오랜만에 나름 긴 글을 썼어요.
오랜만에 마신 알콜!
혼자 떨어져 나온 딸기
동글동글 거북이 빵
폭풍 수다
모두 평온한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