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속의 삶

by 수인

보글보글

물이 끓기 시작한다. 나는 뚜껑을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 한다. 빨리 익기를 바라는 설익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다. 혹은 나도 모르는 새 물이 끓어버릴까 봐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끓어서 넘쳐버릴까 봐, 그 뒷감당이 되지 않을까 봐 나는 그 찰나의 순간도 참지 못하고 끓어가는 물에 시선을 고정한다.


나는 언제나 설익은 사람이었다. 애매한 재능과 애매한 노력. 나는 그 무엇도 끝을 향해 달리지 못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답게 빨리 무언가를 손에 넣지 않으면, 그리고 내가 상정한 목표에 가 닿지 않으면 중간에 포기해 버렸던 까닭이다. 낮은 자존감과 약한 자아 정체성 때문인지 나는 항상 무언가로 나를 증명하고 싶었고 그 증명이 빠르고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거면 시작도 하지 않거나 중간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되지 않을 것에 괜히 매달렸을 때 수반되는 감정 소모를 겪고 싶지 않아서 시간과 노력을 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모습으로 살아왔다. 혹은 내가 바라던 내가 되었을 때의 모습이 은연중에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장 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새는 나가라고 문을 열어주었을 때 바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답답함에 바깥세상으로 나가고자 몸부림쳤음에도 나는 그 좁은 공간 안의 안락함에 서서히 함몰되어 가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나를 향해 감히 다가서지도, 그 모습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나는 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하루하루를 용케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내 안의 모습이라고 여겨졌던 걸 하나하나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꿈을 찾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미운 오리 새끼로 살았던 지난날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리트머스지에 용액이 흡수되어 색깔을 드러내듯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내 색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보다 빨리 미술계에 스며들고 싶었는데 그게 되지 않아 부아가 났다. 무시당하고 배제당하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고 속상했다. 눈물은 늘 그렁그렁 차 있어서 누가 무어라 툭! 말만 던져도 폭! 하고 흘러나왔다. 가슴속에 화가 쌓여만 갔다. 누가 막대기 하나만 던져도 활활 타오를 요량이었다.




지금 있는 미술관으로 이직하기 한 달 정도 전부터 나는 예전 회사가 있던 곳 근처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주택가 골목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와 맛집이 곳곳에 숨어 있는 곳이다. 회사 근처에 있기에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들러 시간을 보냈을 법도 한데 나는 미래를 보며 달리느라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제 겨우 한숨 돌리고 뒤늦게 주위를 둘러볼 때쯤 새로운 시작이 찾아온 것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뛸 준비를 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이야기한 게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하도록 노력할 것이지만 이제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면서 걸어가겠다고, 그렇게 소소함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말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는 다행히 두루두루 주위를 둘러보며 살고 있다. 경치가 좋은 곳에 회사가 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꽃도 보며 걷고 있다. 회사일 말고 사이드 프로젝트에도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어서 그 첫 시작으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쉬었다가 행사 MC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한 밑바탕도 마련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내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언젠가 완벽한 큐레이터, 혹은 작가라는 모습으로 나를 짠! 하고 드러내고 싶었으나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게 언제가 될지도 모르겠고 이제는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의 내 모습을 도외시하고 싶지도 않다. 여전히 나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우당탕탕 살아가고 있지만 그냥 그 모습도 나인 것이다. 애초에 잘 닦여진 반듯한 길을 걷는 건 내 몫이 아니었는지 나는 산속에 조그맣게 난 굽이진 길을 걷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그렇게 여행하듯이 사는 것이 좀 더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It is better to live your own destiny imperfectly than to live an imitation of somebodyelse's life with perfection"


내가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책에서 나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완벽한 삶을 흉내 내며 사는 것보다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 삶을 사는 게 낫다는 말 - 이 문구가 어쩐지 날 향해 하는 말 같았다. 외부에서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삶은 완벽해 보인다. 나는 아직도 과정 속에서 허우적 대는 것 같은데 그들의 삶은 완성형인 것 같다. 언제부터 완성되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눈에는 완성된 것처럼 보이고 완벽해 보인다. 그런 삶을 볼 때면 과정 속에 있는 내 삶이 더 불안해 보였다. 어차피 인생은 계속 걸어 나가는 것이고 끝날 때까지 내 삶이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알 수 없는데 너무 성급하게 인생의 결론을 짓고 싶어 했다.


인생은 어차피 과정이라는 것, 그 과정이 모여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 인생을 비로소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로 했다. 내가 흩뿌려온 점들을 구슬처럼 꿰어야 아름답고 영롱한 목걸이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완성된 목걸이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목에 걸치고 이리저리 자랑하며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구슬도 아름답다. 어쩌면 다른 구슬들과 뭉쳐 있을 때보다 그 빛이 더 반짝! 하고 빛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과정 속 그대로의 모습도, 그 과정이 알알이 꿰어진 완성형의 모습도 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길 - 이게 바로 내가 과정을 사는 이유이고 과정을 드러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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