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성의 안정성
나는 늘 프리랜서들의 포트폴리오를 부러워했다. 자신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 몇 줄의 글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게 참 멋져 보였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촤르륵 지면에 펼쳐있는 걸 보면 어떤 느낌일까? 쌓인 줄의 양과 내용이 직업인으로서의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술계에 들어오기 전에 회사를 다닐 때 한번 상상을 해보았다. 나라는 사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을까? 거기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갈까? 어느 대학교 출신, 무슨 회사, 무슨 부서의 무슨 직급. 나는 이 단 두 줄로 나를 나타내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여 있어야만 내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의 창고는 텅 비어 있었기에 여기에 곡식을 그득하게 채워 넣고 싶었다. 그래야 지만 내가 느끼는 공허감이 조금이라도 가시지 않을까 하여.
너무도 안정적이어서 한번 발 들이면 제 발로 나가기 쉽지 않은 회사에 주로 다녔던 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만한 경력이 딱히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 내에서 부서 이동하고 연차와 성과에 따라 직급은 올라갈 것이지만 외부에 내 포트폴리오를 들이밀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며 늘 새장 속에 갇혀 있던 새가 된 느낌을 가졌던 나는 포트폴리오를 타고 새장 밖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포트폴리오가 무슨 마법 양탄자라도 되는 줄 알았던 걸까. 뭐든 겪어보지 않으면 꿈과 환상만을 가지기 쉽다. 그 꿈과 환상이 나를 항상 다른 길로 이끌긴 했지만.
나는 정규직 회사들을 차례로 뻥뻥 차 버리고 나와서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어시스턴트 큐레이터가 되었다. 내가 유연한 고용 형태를 원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술계 자체가 정규직 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용 형태에 있어서만큼은 절묘하게 나와 미술계가 아귀가 맞았다. 고용 형태가 유연해야지만 나는 계약 조건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다른 일이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도모할 수가 있다. 그리고 여러 미술관이나 미술 기관들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기관마다 장단점과 특징이 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여러 곳에서 근무하며 일을 배우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로 스스로 계약직이 되었다.
겉으로만 보면 멋있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정규직을 때려치우고 계약직이 되었다고? 멋있어! 실제로 나를 아는 동생들은 나에게 멋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나는 내가 멋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지만 여하튼 그런 말을 듣는다. 내가 다른 누군가를 보고 막연히 동경하며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이들도 그러는 거겠지? 그러나 멋있지 않은 순간들도 참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금융업무를 볼 때이다. 내가 가진 자산과 내가 속한 회사, 정규직 여부에 따라 평가되는 곳에서 계약직임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다. 이때만큼은 아무리 미술관에 다닌다는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조금 움츠러드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고용 형태가 유연하다는 것은 당연히 때마다 새로운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몇 개월 전부터 나는 미술계 구직 사이트를 오가며 지원서를 넣을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본다. 내가 이직하고자 하는 시점과 내 경력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여기서 일해도 괜찮겠다 싶은 곳-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물론 그 회사도 내가 마음에 들어야 한다. 이렇게 여러 고려 조건이 맞아야 나는 겨우 다음에 내 한 몸 다닐 회사를 정할 수 있다.
드디어 얼마 전에 내 첫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행사 MC로도 일하기 때문에 MC 포트폴리오는 가지고 있었지만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는 포트폴리오는 처음으로 만들었다. 아직 이 포트폴리오를 외부에 공개해서 이용해 보지는 않았어도 선망했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고 있는 지금, 나는 프리랜서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할지 감히 짐작해 보고 있다. 보이는 그 몇 줄을 얻기 위해 뒤에서 얼마나 노력했을까, 자기 확신과 자기 회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잠식당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단 몇 줄에 그 사람들의 노고가 보인다. 나 또한 그러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부러움과 환상 뒤에 숨겨진 것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도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고자 한다. 이제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거니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남들에게 안정적인 것이 나에게도 꼭 안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정적이어도 내가 그 회사나 업무, 분위기에 맞지 않으면 나는 그 회사를 끝까지 다닐 수가 없다. 미술계에 들어오기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하던 일은 전문성을 가지기도 어려운 일이었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 회사를 나오게 되면 다른 할 일을 알아보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면 당장은 불안할지라도 어떻게든 이 일을 이어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전문성이라고 할만한 것을 아직 가지지는 못했지만 더 공부하고 노력하면 내 전문분야가 생기게 된다. 그럼 이걸 바탕으로 나는 더 오래 일할 수도 있다. 당장은 불안정하더라도, 남들 눈에 내가 너무 불안정하고 불명확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길게 보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어차피 인생은 불안정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원하는 대로만 삶이 쭉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안정적이어도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지금 안정적이지 않아도 그렇게 걸어온 길이 더 큰 안정을 제공할 수도 있다. 어차피 불명확하고 불안정한 삶이기에 나는 삶 속에 뛰어든다.
내 지난 경력과 경험이 시냇물 위에 놓인 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애초에 작정하고 낸 길이 아니기에 돌마다의 거리는 다 다르고 크기도 제각각이다. 나는 시냇물에 빠질까 봐 조심조심 혹은 갑자기 솟아난 용기에 거침없이 내 발 밑을 흐르는 냇가를 건넜다. 하나하나 건널 때마다 때론 힘들었고 때론 내가 택한 모험이 재미있기도 했다. 정제된 길은 아니었기에 이따금씩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하기도 했고 발을 부딪혀 다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건너가고 있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방황하며 행했던 갖가지 일들은 사실 나를 탄탄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준비되었던 것들이라는 것을, 일견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퐁당퐁당 걸어갔던 것이 지금의 길을 만들고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불안정해 보이는 길들이 사실은 안정을 향하는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