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스턴트 큐레이터인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수인

나는 외로웠다.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일이 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과자를 가지고 나타났다. 다른 아이들은 우르르 달려가서 그 아이에게 한 입만 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도 과자를 먹고 싶었지만 다가가는 게 익숙하지 않았기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어쩌면 외로움이 켜켜이 쌓여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외로움을 꾹꾹 눌러 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외로운 줄도 몰랐다. 그저 혼자가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설령 외로움을 느껴도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오만하고 도도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고 움츠러든 채 다녔을 때 우연히 서점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라는 책을 맞닥뜨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고 그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18세기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책은 *젠트리 계급을 통해 계급사회의 이면을 꼬집고, '편견'을 나타내는 엘리자베스와 '오만'을 드러내는 다아시 등, 입체적이고 개성적인 캐릭터를 통해 사람의 면면을 유쾌하게 잡아낸다. 지금과 시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인간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모습을 제인 오스틴 특유의 발랄한 sarcasm으로 가볍되 얕지 않게 담아낸 게 좋았다.


제인 오스틴을 비롯한 고전작품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시공간을 넘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내가 했던 고민을 20세기 초 독일의*싱클레어가 한다. 내가 풋사랑을 하며 느꼈던 감정을 19세기에 러시아에 사는 *블라디미르도 느꼈다. 완벽함이라는 덫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며 나라는 사람을 찾아 나선 나의 모습이 21세기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와 닮았다. 내가 하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이 별난 게 아니라는 위안과 깨달음이 바스락거리는 얇은 종이와 그 위에 점점이 박힌 까만 글씨를 통해 전해졌다.


미술관에서 꿈을 이루어가면서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 정당한지 알 수 없어서였다. 특히나 이 사회는 힘듦에 관해 엄격한 경향이 있다. 괴로움과 고통의 역치는 사람마다 다를 지언대 마치 수학공식처럼 힘듦의 정도를 규정한다. 너는 어시스턴트라서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으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아야 한다, 야근은 어느 정도 이상해야 '나 야근했소'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생활은 다 이렇게 하는 것이다 등등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힘듦의 규정에 조금이라도 내 목소리를 내면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미술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따라서 아는 사람도 많이 없다. 안다 하더라도 다 큐레이터이고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나 코디네이터, 학예연구원 중에는 아는 사람들이 없다. 그래서 정말 답답했다. 내가 지금의 단계에서 느끼는 힘듦을 털어놓고 공감을 얻을 수 없었다. 정당한 힘듦에도 이게 과연 정당한 것인지 내가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검열을 해야 했다. 아는 큐레이터 분들은 이야기했다. 자신도 부당한 일들을 겪었지만 참고 넘겼다고, 자신도 어시스턴트일 때 가장 힘들었지만 그걸 원동력으로 삼아서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나는 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만나고자 한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달하고 싶다. 기획자도 전시에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반영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품어왔던 물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과 전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고전을 읽으며 시공간을 넘어 위로를 느낀 것처럼, 동시대 작가들의 에세이를 통해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잔잔한 위안을 얻은 것처럼 어쩌면 사소할, 또 어쩌면 크게 다가올 나만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과의 접점을 만들고 싶다. 사회에서 나이브하게 여겨지는 한 사람이 그 나이브함을 연료로 삼아 꿈을 향해 날아가는 이야기, 꿈이 일상이 된 현실에 결국 추락하여 고꾸라진 이야기, 간신히 그 안에서 탈출해서 꿈과 일상의 혼재를 터벅터벅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에 손을 내밀지 못한 아이는 커서도 먼저 손을 내밀어 본 적이 별로 없다. 손을 내밀고 싶었어도 이상하게 그 손 한번 뻗는 게 정말 어려웠다. 나에게 기꺼이 먼저 다가와준 사람들의 손만 잡아봤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손을 뻗고 싶다. 아직도 이런 일이 조금 어려운 나는 전시를 통해, 글을 통해 다가가고자 한다. 내 안의 접점을 찾아 방황했던 이야기, 꿈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 이제는 타인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야기. 나로부터 출발한 이 이야기들이 타인의 이야기와 만나게 되길 바란다. 그 지점을 탐색하고 꿈꾸는 한 사람의 첫 이야기이다. 나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다.


영국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 나는 나와 타인과의 접점을 찾는 글쓰기를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 영국에서 중세 후기에 생긴 중산적 토지소유자층. 대체로 작위를 가진 귀족보다 그 지위가 낮으나, 요먼(봉건사회의 해체기에 출현한 영국의 독립자영농민) 보다는 상위에 있는 지주층을 가리킨다. 제인 오스틴 또한 젠트리였다. <오만과 편견> 속 엘리자베스가 자신과 다아시의 결혼을 반대하는 레디이 캐서린에게 "그는 신사고 저는 신사의 딸입니다. 그 점에서는 동등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나온다. 같은 젠트리 계급 내에서도 가문이나 인척, 재산 규모 등에 따라 지위가 나뉘고 결혼도 그에 맞게 하는 관습이 있었으나, 자신도 신사의 딸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엘리자베스의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주인공

* 이반 세르게이비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속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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