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문득 '타인이라는 얼룩'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내 삶은 아직도 많은 부분 타인이 마음대로 흩뿌려놓은 잉크에 얼룩져 있다. 모든 것이 가능했고 가능하다고 믿었던 하얀 도화지 같던 시절, 나는 그 위에 갖가지 나의 모습을 그렸다. 그 색과 모양은 다채로웠고 크기도 제각각이었지만 그 어떤 제한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내 그림에 툭툭 검은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해 더 당황스럽고, 대비하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이었다. 내게 진 이 얼룩들을 어떻게 닦아낼 수 있을까. 얼룩지는 건 한순간이었지만 얼룩을 빼는 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법도 몰랐기에 이리저리 길을 찾아 헤맸고, 아직도 나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열심히 세탁 중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업무 메일을 열었다. 전날 내가 한 실수에 대한 사과 메일에 작가님이 답신을 보내신 것이었다. 미처 확인하지 못해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하다는 내 말에, 신경 쓸 게 한 두 개가 아닐 텐데 괜찮다며 괘념치 말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메일을 바라보았다. 사회적 예의와 인간적인 따스함이 동시에 들어있는 그 메일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텅 비어 공허한, 그래서 사실 아무것도 아닌 타인이 나에게 흩뿌려 놓은 얼룩이 사소하지만 꽉 찬 한두 방울의 따뜻한 말에 희석되었다. 자신의 입장만 생각해 마구 뿌려댄 말과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 살포시 보낸 말의 극명한 차이가 느껴졌다.
가장 극심하게 흔들렸던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나는 3주 동안 뉴욕으로 여행을 떠났다. 뉴욕으로 여행을 간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뉴욕의 가을을 느끼고자 비행기표까지 예매해 놓았다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 가지 못한 적이 있어서 그 한(?)을 풀고 싶었다. 두 번째는 반짝반짝한 크리스마스 시즌의 뉴욕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뉴욕은 참 화려하게 반짝였다. 나는 그 화려함에 취해 (+퇴사 텐션에 취해) 들뜬 마음으로 뉴욕을 쏘다녔더랬다. 그러다 1월 1일에 신자의 도리를 지키고자 5번가에 있는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이브에도 감기 걸린 채 미친 듯이 일을 하던 나였는데, 갑자기 낯선 뉴욕에 있는 이토록 예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솟아 줄줄 울었다. 미사를 집전하시던 파란 눈의 신부님은 그 엄격한 눈동자 속에 걱정과 염려를 담아 나를 쳐다보셨다. 내 옆에는 한 가족이 미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미사 중 서로 손을 잡는 시간이 되자 다소 도도해 보이는 옆자리 꼬마가 '에휴, 이 언니(혹은 이모) 뭐야 신경 쓰여.'라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 한번 푹 내쉬더니 턱! 자신의 손을 내게 내밀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고맙기도 내 모습이 나도 참 당황스럽기도. 여러 생각과 감청이 교차하는 가운데 여전히 줄줄 울며 미사를 마쳤다.
누가 봐도 낯선 이방인인 한 여자가 미사 시간에 울고 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걱정은 된다. 하지만 그 걱정을 함부로 드러낼 순 없어서 눈빛으로, 손짓으로 위로한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위로에 그 순간만큼은 이방인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내 나라에서, 내가 속한 집단에서조차도 늘 이방인 같았는데 전혀 관련 없는 타인의 인간적인 연민과 유대감에 마음이 풀려버렸다. 비단 뉴욕의 성당뿐만이 아니라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따스함과 유쾌함, 친절을 이따금씩 기억한다. 여수 여행 중 들른 밥집이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것을 알고 발길을 돌리려고 했을 때, 기다리라고 하더니 이것밖에 없다며 집에 있던 밥과 반찬을 기꺼이 내어주던 사장님, 치앙마이에서 묵었던 한 호텔에서 떠날 때 또 오라며 선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던 호텔 직원들, 아트 바젤 홍콩을 보러 혼자 홍콩에 갔을 때 밤에 갑자기 아파서 끙끙대고 있었는데, 새벽녘에 기꺼이 달려와서 나를 간호해주던 따뜻한 프로페셔널함을 지닌 홍콩의 한 호텔리어 (그날 아침에 교대근무를 마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퇴근하는 그녀의 모습 뒤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등 낯선 타인에게 기꺼이 친절을 내어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내 안의 반짝임을 찾지 못해 나는 늘 외부로 반짝임을 찾으러 다니곤 했는데, 여행지에서 가장 반짝이는 건 사실 사람에게 있었다. 화려한 거리, 불빛의 반짝임은 찰나의 즐거움이었지만 타인이라는 위로는 마음속에 두고두고 남았다.
"쪼르륵...” 힘없는 소리를 내며 사무실 정수기의 물이 끊겼다. 아까 정수기 정비해주시는 분이 다녀가신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이지? 하여간 목이 말랐으므로 근처 편의점에 물을 사러 갔다. 컴퓨터와 각종 서류, 타다닥 키보드 소리만 들리는 사무실에서 벗어나니 9월 주중의 평화로운 가을날이 펼쳐졌다. 하얀색의 털이 긴 강아지는 바람결에 털을 흩날리며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앙증맞은 안전모를 쓴 아이는 엄마와 함께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가을빛에 반짝였고,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살랑거렸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거울로 날 보지 않아도 아주 행복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무실에 갇혀서 일하는 동안 나는 자꾸만 내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자의도 있었고 타의도 있었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싶어서 자꾸만 내 안을 들여다봤고 그렇게 나에게 함몰되어 갔다. 타인에게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타인과 사회의 시선에 얼룩진 마음을 타인에게 열고 싶지 않았다. 외부에 시선을 돌려서 그 시선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금세 또 흔들려서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시선을 조금 자유롭게 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너무 나에게 돌리지도, 밖으로 돌리지도 않고 때로는 나에게 때로는 타인과 외부에게 돌리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 마음이 어두울 때는 너무 아래로 가라앉는 것에서 벗어나 바깥을 보고, 바깥이 하 수상할 때면 내 안의 고요를 찾아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몇 년 전부터 찾아 헤매던 완벽한 균형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나는 시간의 흐름에 유영하면서 균형을 향해 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성장했고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타인이란 이중적인 존재이다. 나를 나답게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이자 아프게 찌르는 가시이다. 말랑말랑하고 희었던 내 마음에 상처를 내고 원하지 않았던 색을 입혀서 내 마음을 종국에는 딱딱하고 어둡게 만든 타인을 원망하고 비난했다. 점차 내 모습을 잃어가고 걷잡을 수 없이 세지는 내가 힘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타인은 이런 나를 일으켜 세우고 가시를 뽑아주었다.
나는 나를 찾고 싶어서 꿈을 찾았다. 그림을 보며 내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서 고요를 발견하기를 바랐다. 내 업은 그렇게 처음에는 날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날 위해 시작한 이 업을 이젠 방향을 틀어 밖으로, 타인에게로, 세상에게로 확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더 공부하고 더 가다듬어서 작품과 예술의 가치, 그 속에 담긴 생각과 감성을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내가 만든 전시에 공감하고 녹아드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그 자체로 치유될 것이다. 아픔이 잦아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의 아픔 또한 어루만져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