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은 당신에게, 아니 나에게-

균형을 향해 가는 삶

by 수인

“오늘 날씨가 참 부드러워요!”

“??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하는 표정)”

“(살짝 시무룩) 아니... 부드럽잖아요, 오늘 날씨가..."

“뭐.. 가요? 어디… 가요?”


나는 작고 귀엽고 아름답고 살랑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나가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하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정신없이 바라보며, 꽃과 나비를 지나치지 못하고 보드라운 바람을 느끼며 하늘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운이 좋게도 회사가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덕분에 나는 점심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에도 종종 이렇게 여유를 만끽하는 사치를 부린다. 그리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친하게 지내는 큐레이터 선생님들에게 재잘대며 이야기한다. 한 선생님은 "어, 정말 그렇네요!" 하며 맞장구를 쳐주지만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다른 선생님은 "뭐... 가요?"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나는 주로 후자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선생님이 신기해서 물었다.


"선생님! 미술 하는 사람이 감성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ㅎㅎ"

"큐레이터는 이성적이어야 해요."

"왜요?"

"작가나 업체 사람들과 컨택하며 일을 할 때도 이성적이어야 하고, 전시를 할 때 특정 작가나 작품에 대한 자신의 기호로 치우진 전시를 만들면 안 되죠. 저는 좋아하는 작품이 뭐냐고 물어도 없다고 해요. 편향되면 안 되니까."

"아하! (깨달음)"


나와 나이는 같지만 미술계 경력은 훨씬 많다. 오랫동안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항상 중도를 지키며 성실히 일하는 선생님이다.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나와는 다르게 이성적이고 체계적이다. 그래서 일을 할 때나 고민이 이 있을 때 도움을 많이 받곤 했는데, 어느 날 이성과 감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나서 일을 할 때의 균형과 조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감성에 퐁당 빠져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꽤나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따지고 판단했다. 내가 지금 이 일을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성공할 확률과 실패할 확률은? 기회비용은 어떻게 되지? 내가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있을까? 이 일을 통해 내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이지? 그런데 이렇게 살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져도, 이 업무를 하며 너무나 불행하게 느껴도 이성적으로 현실을 따져보면 "너 지금 무슨 배부른 소리야! 그냥 다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가 문득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 죽기 전에 자기가 살아온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데 (죽을 뻔한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자 실제 자신이 살아온 나날들이 눈앞에 영화처럼 펼쳐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의 8할이 하기 싫어서 억지로 살아온 날들이면 어쩌지? 생각이 이에 미치자 너무 아찔했고, 그때만큼은 내 마음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줄곧 나는 마음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며 살아왔더랬다.


내 마음과 직관은 숱한 방황 끝에 나를 지금 있는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이번에는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게 문제였다. 꿈이 꿈의 지위에서 내려와 일상으로 내게 스며들었을 때 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곳도 일하는 곳이고 따라서 예전에 겪었던 각종 문제들이 있는 게 당연했으며,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꿈에 지나치게 권위를 부여해버린 탓에 꿈만이 가지고 있는 빛의 희미해져 그저 그런 색이 되어버리는 게 못마땅했다. '사랑하는 일의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도슨트 하면서 알게 된 다른 기관의 큐레이터에게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사랑하는 일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제일 괴롭다고 했더니 자신도 정확히 그런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미술계에 들어오겠다는 나를 말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나에게 미안하다. 약한 정체성을 꿈과 일로 찾고자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정작 돌봐야 하는 나를 돌봐주지 못해서, 꿈이 있기 이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해서. 꿈을 좇으면서 알게 된 건 내가 꿈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분명 꿈이 있는 사람은 반짝거린다. 아름답게 빛난다. 하지만 내가 없으면 꿈도 소용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나는 꿈을 찾고 이를 지켜가면서 비로소 세상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야 함을 알았다. 그리고 새로운 꿈도 자라났다. 그건 바로 좋은 상사이자 인생 선배가 되는 것. 지금에야 나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멘토가 있지만 나는 언제나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고,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상사 때문에 마음고생도 심하게 했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다른 타인에게 되갚지 않는 것, 타인이라는 얼룩을 빼고, 타인이라는 위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균형을 향해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 때문에 아팠던 나는 어쩌면 무의미함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의미에 천착하는 삶보다 나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의미에 천착하면 한없이 무거워지고 생각은 중력처럼 나를 아래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벼운 생각과 감정은 나를 위로 떠오르게 했다. 나는 가벼워지기 위해 실없이 헤실거렸고 지나치게 발랄했으며 각종 취미생활을 하며 밖으로 떠돌았다. 그렇게 일로 인해 무거워진 마음을 무용하게 여겨지는 것들로 가볍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그 어디엔가 위치하고자 한다. 한쪽 끝으로 진자의 추가 쏠리려고 할 때마다 명료한 정신으로 추를 살짝 집어 올려 중간 그 어드메에 옮겨놓고자 한다. 지나친 열정에 의해 내가 사그라졌지만 차갑게 그 불씨를 꺼트리기보다는 적당한 온기로 내 삶을 덥히고자 한다. 어차피 예술은 인간과 삶을 사랑하는 것이고 일을 사랑하는 것도 종국에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강렬한 불꽃으로 국소 부위를 뜨겁게 하는 것이 아닌, 잔잔한 온기로 보다 넓은 범위를 따뜻하게 만들고자 한다. 이 또한 균형점을 향해 가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다.




동갑 큐레이터 선생님은 이제 내가 "오늘 날씨 너무 예뻐요!”라고 말하면 반자동으로 "네 그러네요!"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영혼 좀 넣으라고 장난을 또 치지만 이성에 감성 한 스푼 넣으려는 선생님을 본받아(?) 감성에 이성 한 숟갈 넣으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에게 글 전체 제목을 뭐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 중이라고 하자, 그간 읽었던 산문집의 제목을 예시로 들며 조언을 해주었다. '엥? 뭐야, 산문집도 때때로 읽고 감성적인 면도 있잖아!' 사실은 선생님도 마음 한편에 감성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에서 살아남고 일상을 충실히 살기 위해 이성에게 자리를 살짝 비켜주었을 뿐. 다른 큐레이터 선생님은 평소에는 무표정으로 정말 일을 열심히 하는데 알고 보면 귀여운 캐릭터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법한 사소한 것에도 아름다움을 넣으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전시장 벽면에 들어갈 텍스트의 색과 광택을 세세하게 고민했다며 뿌듯해했는데, 일견 사소해 보이는 것에도 미적 감성을 넣으며 좋아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러니까,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너도 그래야 해 - 이런 말을 참 싫어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이렇게 살아야겠다. 여전히 마음을 따라가는 삶이되 그 마음을 때로는 적절하게 조절하며 똑똑하게 살아야겠다고. 내 마음과 감성을 자유롭게 해준만큼 이성에게도 그럴 자유를 조금 더 주어보겠다고. 그렇게 균형을 잡도록 노력해야지만 나는 일과 나,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결국은 마음껏 일을 사랑하기 위해 균형을 향해가고 그렇게 나와의 접점을 찾아간다.


나는 정말 이렇게 이야기한다. 감정에 충실한 파워 f이지만 균형을 잡아가기로 했다. 접점을 찾는 건 내 안에 있었다 - tvN 리얼리티 프로그램 <윤식당3> 중


keyword
이전 29화내 꿈을 비 맞게 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