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불명의 편지
널 처음 봤던 날을 기억해. 가까운 곳에 네가 있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 그날은 끔찍했어. 소중한 사람이 죽었으니까. 설마 죽겠어?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하다가 나는 그 사람의 마지막 숨이 몸에서 빠져나간 후에야 그의 앞에 섰어. 병실 침상에 누워 죽어있는 그는 그가 아니었어. 영혼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는 건 허물뿐이더라. 나는 덜덜 떨면서 그의 허물을 만져보고 생각보다 따뜻하고 말랑한 감촉에 흠칫했고, 온몸이 하나의 거대한 멍자국 같은 그 모습이 가여워 울지도 못하고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어.
그날 5분만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1시간만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아니 3일만 일찍, 갔더라면. 내겐 병원에 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어. 그렇지만 가지 않았지.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마 나는 그냥 모든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내가 말리기만 했어도.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있기만 했어도. 내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그곳에 갈 자신이 없었던 거지. 생각이 거기까지 뻗치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공포와 황당함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참담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차분해진 내 눈앞에 이윽고 네가 어김없이 나타나.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단 일초도 벗어나지 못하고 너와 함께 살아가게 되었어. 정확히는 그날 이후, 네 존재를 좀 더 뚜렷하게 언제 어디서든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달까.
너는 늘 그랬어. 최악의 순간을 겪고 난 직후 자객처럼 소리 없이 찾아와 내 숨통을 조여. 예전엔 기척이라도 있었지. 요즘은 네가 너무 불쑥 그리고 자주 찾아오는 거야. 한 번은 인스타그램 피드에 뜬 게시물 중 하나를 봤어. 제목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었나. 뭐라고 쓰여있나 싶어 읽어봤거든. 성공하는 사람들은 후회를 하지 않는대. 근데 뻔한 소리를 정성스레 포장해놓은 말 같지도 않은 그 게시물에 댓글이 몇 백개가 달리더라. 심지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태그 하며 힘내래. 그러면 힘이 나나 봐. 그러면 성공하나 봐. 그러면 지긋지긋한 너의 존재를 무시하고도 살아갈 수가 있나 봐. 그래? 나는 잘 모르겠어. 네가 그 정도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존재라면, 그동안의 너로 인한 나의 감정도 실체가 없는 거였어? 수십 년간 견뎌온 너로 인한 고통의 감각이 이토록 생생한데 말이야. 세상이 성공을 강요해. 요즘은 그나마 나아진 줄 알았는데 실은 더 그래. 쓰는 문장만 달라졌어. 더 치밀하고, 더 잔인해. 말과 글을 무기로 사람들을 반으로 가르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래. 추종자가 많은 쪽이 힘을 얻고, 추종자가 적은 쪽은 힘을 잃어. 그 뻔뻔한 게시물로 인해, 늘 후회를 안고 살아온 나같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루저가 되었어. 세상 모든 게 매번 그런 식이야. 목을 조른채로 인공호흡기로 입을 틀어막고 숨 쉬라는 것 같았어. 나만 그랬을까? 아니라고 봐. 사실은 다들 숨 막혀 죽을 것 같으면서도 안 그런 척 하려고 댓글을 다는 걸 알아. 근데 내가 그들과 뭐가 달라.
지나는 시간이 아쉽고 아까워서 오분만, 십 분만 잡아보고 싶었어. 죽음을 통해 알게 되었기에, 너의 존재는 나에게 늘 공포의 다른 이름이었어. 나는 네가 다가오면 죽을 것 같아서 시간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살았어. 그래서 좀 더 창조적인 거, 좀 더 의미 있는 거를 하고 싶었어. 그게 아니면 돈이라도 왕창 벌고 싶었어. 되돌릴 수 없는 일에는 늘 네가 있었고, 현실엔 테넷이 없기에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술은 어디에도 없었지. 그래서 나는 너로부터 달아나려고 아쉽고 아까운 지나는 시간을 오분만, 십 분만 잡아보려 했어. 좀 더 창조적인 거, 좀 더 의미 있는 거, 돈을 왕창 벌 수 있는 거를 해보려고 했어. 그러면 그럴수록 너의 존재는 더욱 또렷해졌지. 네가 없는 나를 바라다보면 너를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또 빠져들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섬뜩한 기분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면 너는 아무 표정 없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어. 그럴 때마다 난 너에게 비웃지 말라고 하지만, 실은 정말로 네가 날 비웃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네겐 표정이 없으니까. 날 비웃은 건 네가 아니라, 실은 나였지.
한 번은 그런 질문을 해봤거든. 내가 너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나의 열등감에 대한 사랑만큼은 아니더라도, 너를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좋아할 수 있을까? 답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거였어. 열등감과는 달리 넌 내 일부가 아니라서, 내게 너를 사랑해 줘야 할 책임 같은 건 전혀 없잖아. 너에 대한 나의 바람은 이거 하나야. 나로부터 멀리멀리 떨어져 줘. 멀리 저 멀리 네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갈 수 있도록 부디 꺼져줘. 멀리 가는 척하다가도 은근슬쩍 나의 욕망 뒤에 기생해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나 소름 끼치는 무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걸 멈춰줘.
나는 언제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임질 그 무엇도 만들고 싶지 않았어. 그런 나를 무책임하다며 나무라는 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기에, 그들의 존재는 내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어. 그런데 너의 존재는 그들과 정 반대였어. 너는 아무 말 없이 늘 나를 압도했지. 내 곁에 있어야 할 것들과 내 곁에 있음 직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에도 늘 불안했기에, 나는 불쑥불쑥 나타나는 너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못한 채 벌 받는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곤 했어.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 그래서 이런 걸 쓰게 됐어. 내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야. 이제 나는 자신의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들과 너를 같은 존재로 볼 거야. 그들이 던지는 비난의 말만큼이나, 너의 실체가 내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게 말이야. 이처럼 담담하고도 초연한 나를 보고도 내게 오고 싶다면, 그래. 와봐. 네가 감추고 싶어하는 두려움을 낱낱이 끄집어내 너의 실체를 무표정으로 관망해줄 테니까. 늘 그랬듯 네가 불쑥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표정 없이 너의 눈을 보며 네가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거야. 네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내가 존재할 거야. 그렇게, 여기 내가 있다고 주장할 거야. 네가 어둠으로 내려앉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음으로써 너를 압도할 만큼 커다란 마음을 가진 내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