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가되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다. 직장을 다니던 아빠의 귀가 시간은 매일 밤 열 시에서 열 두시 사이.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집안으로 흐물흐물 쏟아지던 아빠의 재킷에 배어있는 소주와 고기 냄새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런 아빠는 주말마다 나를 데리고 부지런히 외출을 했다. 외출 준비를 마치는 순서는 늘 아빠 - 나 - 엄마. 세수부터 겉옷 장착까지 가장 빠르게 끝낸 아빠는 1층으로 내려가 초록색 캐피탈 승용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어슬렁거렸다. 가끔 엄마의 외출시간이 너무 늦어지면 2층 창문을 향해 빨리 좀 나오라고 외치던 아빠의 모습이 나는 꼭 오늘일 같다.
우리는 63 빌딩에 자주 갔다. 특별히 거길 좋아했다기보다는 거주하던 상도동에서 가깝고, 요즘처럼 전시장, 영화관, 각종 체험관이 즐비하기 전인 1990년대 초반 당시에 구경할만한 신문물이 가장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코엑스에 아쿠아리움이 개장하기 한참 전, 코엑스가 생기기도 전이라 대형 수족관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수족관에서 물고기 보는 걸 좋아했고, 전망대에 올라가기 위해 탑승한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 창 밖을 바라보는 걸 무서워했다. 3D 영화관에서는 동물들이 튀어나오는 매번 똑같은 영화를 상영했는데, 여러 번 봤지만 재미로 봤다기 보단 기념삼아 본 것 같다. 관람료가 상당히 비싸고 지루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한 번은 아빠가 무슨 결심이 섰는지 이제부터는 내가 역사공부를 해야 한다면서 전쟁기념관에 나와 엄마를 데려갔다. 정확히 어디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이었는지는 이제 와서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이촌에 있는 기념관이 맞을 것이다. 그곳에 안 간 지가 오래돼서 지금은 어떤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전시관 안에 밀랍인형들이 아주 많았다.
전쟁기념관에 웬 밀랍인형이냐고. 가엾게도 일제강점기 일본의 순사들이 애국지사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재현하기 위해 끌려온 인형들이었다. '만행'을 재현하고 있는 만큼, 그 전시 내용이란 상당히 잔인했다. 지금 생각하면 19세 이상 관람가가 아닌 것이 의아할 정도다. 어디서 들었는데,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게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가장 고통스러운 거라고 하더라. 음. 내 눈에 밀랍인형들은 천천히 죽어가는 영혼들처럼 보였다. 혹은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애국지사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새빨갛게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뜨고 상접한 피골로 어딘가에 갇혀있거나,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거나, 툭 치면 부서질 것처럼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꼬마유령 캐스퍼를 볼 때도 무서워서 불을 켜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던 나였다. 비좁은 관속에 산채로 갇혀 호흡곤란에 시달리는 밀랍인형들을 보고 나는 숨도 못 쉴만큼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그만 보고 집에 가자는 나의 성화에 우리의 나들이는 결국 실패. 아빠는 그날 엄마에게 등짝을 몇 번이나 팡팡 맞았고, 왜 하필 이런 곳에 애를 데려오냐는 군소리도 들었다.
또 한 번은 쥬라기 월드 전시장에 갔다. 거기엔 공룡들이 아주 많았는데, 움직이는 공룡들의 심장에는 전기 배터리가 달려 있었다. 묵직하고 커다란 전기 배터리를 달고 포효하거나 고개를 까닥거리는 공룡들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아빠 이건 익룡. 이건 티라노 사우르스. 엄마 이건 플라토 사우르스. 책에서 본 공룡들을 떠올리며 한참 즐겁게 관람을 하고 있는데... 내가 또 뭘 봤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혀 머리만 덜렁덜렁 남아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새끼 공룡이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차라리 다행이었으련만... 새끼 공룡 뒤에 금방 자식을 허무하게 잃은 엄마 공룡이 망연한 표정으로 무너질 듯 서있는 게 아닌가. 맙소사. 8세 관람가 전시에 도대체 왜 그런 잔인한 장면을 연출한 건지 난 아직까지도 의문이 남는다. 어쩐지 기분을 잡친 나는 그날 전시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돌아오는 차에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악당이 죽으면 저 악당도 열심히 살았을 텐데 싶어서 슬퍼 우는 애였다. 그날 이후 나는 며칠 내내 줄곧 실제로 존재했는지 어쨌을지도 알 수 없는 아기 공룡과 아기 공룡을 잃은 어미 공룡이 불쌍해서 아픈 마음으로 뒤척거렸다.
아무튼 나는 그런 것들을 보며 자랐고, 내가 본 장면들이 내 일부가 되었던 건 분명하다. 나는 애국지사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고 다짐했었다. 또한,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만행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그건 지금도 늘 갖고 있는 생각이다. 또, 동물들도 인간들처럼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감정이 있는 존재들이니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를 잔뜩 먹으면서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들에게 늘 미안함을 느끼며, 그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짊어질 수밖에 없는 죄책감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뭐 그런가 하면 따뜻하고 즐거웠던 나날들에 대한 기억도 많다. 기억은 아지랑이처럼 남아서 이따금씩 일렁인다. 예를 들면 가을밤 가로등 불빛이 여느 때보다 조금 더 선명할 때 라거나. 나는 몇 겹의 포근한 분위기, 햇살, 재잘대는 소리와 풀 냄새 같은 것들의 잔상이 남긴 반짝임으로 그날들을 기억한다. 대전 엑스포를 관람하며 꿈돌이를 그렸던 것, 크고 예쁘고 매끈매끈한 상어를 보며 놀라고 신기했던 것, 봄 햇살이 쏟아지는 보라매 공원에서 파릇한 잔디 위를 뒹굴거리던 것. 그날 매미가 벗은 허물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짓궂은 사촌이 그걸 나에게 들이밀었고 나는 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도망갔다. 그때는 그 애가 너무 미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날들이 그립기만 하다. 뛰어다니는 우리 위로 잠자리가 날았다. 날씨가 좋았다. 아빠가 웃었다. 멀리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내 곁에 한동안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살아서는 갈 수 없는 다른 세상으로 갔다.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한장은 내 지갑 속에 늘 가지고 다니고, 다른 사진들은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이따금씩 꺼내보곤 한다. 꺼내어 바라보면 그날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나의 그리움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아빠와 함께 보낸 과거의 어느 날, 빛의 잔상이 이끄는 세계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난 하늘에 있는 아빠가 아마도 이 글을 볼 것이라 생각한다. 코로나가 없는 다음 생에 만나면 루브르 박물관과 모마 미술관과 오르셰 미술관에 아빠와 꼭 함께 가보고 싶다. 실은 현생의 나도 아직 못 가봤으니, 살아서 꼭 혼자서라도 가볼 거고, 다음 생에는 아빠랑 또 가볼 거다. 그리고 전쟁기념관과 쥬라기 월드도 아빠와 다시 한번 가고 싶다. 이제는 전쟁기념관에서 우리 조상들로 인해 내가 살아 숨 쉼에 대한 감사함과,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내가 지켜내며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쥬라기 월드에서 공룡세계의 멸망과 공룡의 멸종 원인에 대해서도 인간의 멸종 가능성과 더불어 한참을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응. 그런 날이 왔으면 한다. 그리고 올 것이라 믿는다. 나와 아빠는 꼭 다시 만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