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함을 먹고 자랐다.

많이 먹어서 키가 큰 편

by Kyum


사는 거 참 우울해.


라고 생각했었다. 꽤 오래, 꽤 자주, 그랬었다. 아. 물론 사는 게 행복하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하지만 행복 체감 수위 레벨이 30 정도라면, 우울 체감 수위는 80 정도였다. 한번 우울함을 느낄 때 그 강도가 훨씬 컸다는 얘기지.


-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할까.

나에게 물어봤다. 답이 안 나왔다. 질문을 바꿨다.

-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우울했을까.

또 다른 내가 대답한다.

- 몰라. 아주 어릴 때부터?

- 무엇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 걸까?

맙소사. 나는 답을 알고 있다.

- 그건 아마 영광굴비 때문일 거야.


여섯 살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생물'과 '무생물'을 개념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된 게. 그 전에는 난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먹을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해왔다. 예를 들어 돌멩이는 못 먹는 것. 영광굴비는 먹는 것. 하지만 이 둘의 본질적인 차이는 몰랐다. 산에 돌멩이가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영광굴비가 원래는 바다에서 헤엄치던 생물이라는 걸 몰랐다는 말이다. 근데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를 피해 열심히 도망가던 얼룩말 무리 중 속도가 느렸던 얼룩말 한 마리가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면서, 불행히도 문득 뭔가를 알아차려 버렸다.


- 엄마. 물고기 원래 살아있었어?

- 응.

엄마가 영광굴비의 뼈를 정성스럽게 발라 내 밥 위에 한점 얹어주며 대답했다.


- 그럼 죽여서 먹는 거야?

- 죽여야 먹지.


나는 엘에이 갈비를 가리켰다.

- 그럼 갈비는?

- 이건 최고로 좋은 소고기지. 미국산 엘에이 갈비.

- 그럼 소를 죽여서 먹는 거야?

엄마가 짜증이 섞인 말투로 날 노려보며 말했다.

-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쓸데없는 걸 물어? 밥이나 먹어.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밥상 앞에서 울먹거렸다. 머리가 아찔하고 가슴이 아팠다. 세상에. 뭐야. 다 죽여서 먹는 거야? 얼룩말 잡아먹는 사자 보고 잔인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자랑 똑같이 잔인한 거네 그럼. 아냐. 난 더해. 사자는 얼룩말만 먹잖아. 나는 물고기도 먹고 소고기도 먹는데...


엄마가 당황하는 사이 나는 얼른 내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우는 내 모습을 엄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다. 애가 사춘기가 일찍 온 것 같다며 아빠에게 하소연하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일기장을 펼쳤다. 미안해. 영광굴비야. 미안해. 소야. 사람이라서 미안해. 잡아먹어서 미안해. 이제부터 안 먹을게. 그렇지만 아빠도 엄마도 다 먹는데 어떡해. 미안해. 엉엉... 배가 꼬르륵 거렸다. 그렇지만 그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난 내가 인간임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뭐든지 먹어치우는 이기적인 종족이라 너무 미안했다. 게다가 돼지, 닭, 소를 도살장에서 어떻게 잡는지를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고 듣게 된 후로는 정말이지 죽고 싶을 정도로 동물들에게 미안했다.


내가 인간이라 우울하고 슬픈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많이 생겼다. 사람들은 다른 종족은 죄다 잡아먹고, 같은 종족은 죄다 죽였다. 전쟁 때문에 죽였고, 심심해서 죽였고, 화가 나서 죽였고, 성욕에 못 이겨서 죽였고, 사기를 쳐서 자살하게 만들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근현대사였다. 하... 착한 사람들은 죄다 죽어. 그리고 죄다 나쁜 일을 당해. 친일파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애국지사들은 고문당하고 처형당하고. 일본군 성노예 사건 피해자들, 그 어린 소녀들이 입에 담기도 싫은 끔찍한 일들을 겪고... 일본군 자제들은 집에서 비싼 음식 먹고 귀하게 자랐을 텐데. 4.19 혁명. 세상 똑똑하고 의식 있는 대학생들,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국가차원에서 형사라는 사람들이 체포해서 전기 고문하고 물고문하고. 나라의 통치자라는 사람이 정치적 목적으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워서 사법살인을 하고. 세상에. 세상이 왜 이럴까. (이걸 쓰는 지금도 화가 남) 온통 끔찍한 일을 당하고 고통스럽게 죽는 사람들 이야기뿐인 근현대사 공부가 나는 정말이지 힘들었다. 미취학 아동일 때 본 모든 동화책에서 분명 세상은 '권선징악'의 구조였다. 나는 그래서 세상이 착하고 정의로운 곳인 줄 알고 자랐다. 그런데 젠장. 권선징악은 결국 피해자들의 한풀이 넋두리 같은 거였구나. 진작 나한테 좀 알려주지. 나는 동화 작가들에 대한 배신감에 절망했다. 너무 슬펐다. 나의 슬픔은 머리카락과 손톱 같았다. 자르고 잘라도 계속 자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때가 되면 슬픔을 적당히 털어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어쨌든 그것은 잘라낼 수 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절망감은 달랐다. 나는 한 때 살아있는 생물이었던 모든 음식을 먹을 때마다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절망감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나는 키가 170cm까지 커버렸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과 싸우기로 최초로 결심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 나는 그때 펑크록 음악에 빠져있었다. 외국가수는 그린랜드, 린킨파크. 한국 가수는 노브레인, 크라잉넛, 레이지본을 좋아했다. 이어폰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갈 정도로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펑크록을 듣고 있으면 일시적이나마 머릿속에 들어있는 쓰레기같은 잡념을 비워낸 것처럼 시원했다. 그날도 아이리버 MP3플레이어에 가득 담은 펑크록 음악을 귀가 떨어져 나갈 만큼 크게 들으면서 집에 가고 있었다. 근데 이 노래가 나왔다. 1999년. 크라잉넛의 서커스 매직 유랑단 앨범 수록곡.


나는 거짓말쟁이. 너도 거짓말쟁이. 우린 지금 여기...

- 모두 다 죽자.


그러니까, 노래는 다 죽자고 하는데 나는 되게 살고 싶어지는거다. 참 죽도록 살고 싶어졌다. 그동안 살면서 이만큼이나 삶의 의지가 펑펑 솟아오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날 나는 하릴없이 허공에 씩씩대며 세상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아니. 삼겹살 먹으면서 왜 미안해야 되는데. 사람으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자본주의 사회고, 인구수가 너무 많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이렇게까지 개체수를 늘린 조상들 잘못이지. 잘못은 조상들이 했는데 도대체 내가 왜 미안한 건데.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태어났을 뿐인데. 그리고 역사적으로 일어난 끔찍한 일들은 이미 일어난 거잖아. 내가 뭐 어떻게 그 시대로 갈 수도 없고 간다 해도 해결할 수가 없는 일들이잖아. 세상이 엉망진창인 게 내 탓은 아니잖아.


그날 나는 전투력 만렙 모드로 감정을 마구 쏟아냈다. 눈물은 안 났다. 다만 화가 났다. 그리고, 화를 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내가 나임을 인정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좀 변했다. 나는 우울함과 싸우고 화해하고 가끔 져주고 그러면서 같이 살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우울함은 뿌리는 깊지만, 알면 알수록 꽤 가볍고 소모적인 것이었다. 차오르기가 쉬운 반면에 쉽게 해소되기도 했다.


요즘도 매일 우울함과 싸운다. 때로는 지고, 그러다 비기고, 어떤 날은 이긴다. 가끔 나의 우울은 예고 없이 퍼붓는 소나기처럼 한꺼번에 잔뜩 쏟아져서 갑자기 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럴 때는 K.O 모드로 납작 엎드려서 그냥 져준다 생각하고 그 시간을 버틴다. 비 오면 비 오는대로 우산 쓰고, 우산 없으면 없는 대로 맞으면서 견디지 뭐.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을 인정하고 살자.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그만 느끼자.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이겨내는 거다.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라는 근거는 도처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나는 여전히 잔인한 역사의 발자취나 타인의 잔혹성에 의한 피해로 죄 없이 고통받는 인간의 내면을 텍스트나 영상으로 스칠 때마다 고통스럽다. 때로는 그날의 고통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아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은 내가 인간이어서 느끼는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존재의 숙명이 아닐까. 나는 줄곧, 인간에 대한 환멸과 그럼에도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게다가 고기와 회를 좋아하는) 이중성을 안고서 살아왔다. 그런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은 이처럼 환멸스러운 인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 자신도 포함하여.


그러니까, 내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환멸 때문이라는 아이러니.


아. 요즘은 영광굴비와 엘에이 갈비를 잘 먹는다.

2014.12. 통영, 이순신 공원. 우울할 때 보는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