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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ytowin Nov 27. 2022

「"파우스트" 읽기 40년」, 잃어버린 40년

오늘은 중앙대 논술 시험이 있는 날입니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읽게 된 지문인데, 해석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부분이 있어서 글로 남깁니다.



『파우스트』 읽기 40년

김주연 씨는 자신의 수필 「"파우스트" 읽기 40년」에서 『파우스트』를 여러 번 읽게 되면서 문학과 인문주의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래에는 논술 시험 지문에 나왔던 부분입니다.


“파우스트”는 이후에 독일어 원문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독문과에 진학한 나로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아무튼 학교에서 독일어로 읽고 번역하고 배움으로써, “파우스트”는 예전과는 다르게, 비교적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파우스트의 행로가 ‘죄와 구원’이라는 인간 본질의 역정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이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헤매던 나에게 죄, 구원, 본질 따위의 단어가 우리의 물질적 실존과도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차츰 시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우스트”는 나에게 문학, 또는 인문주의에 대한 개안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중앙대 2020년 논술 기출 지문 중 발췌


안타깝게도 김주연 씨는 40년 동안 『파우스트』를 읽었지만, 그것을 해석해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우스트』는 인문주의를 이야기하는 책도, 죄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책도 아닙니다. 『파우스트』는 여성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으로, 여성적인 것만이 인류를 천상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해석은 행동으로 드러났을 때에

해석은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운 영역임에 분명합니다. 해석은 경험에 근거하지만, 경험이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렇지만 경험이 해석에 분명한 도움을 준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철학적 해석학에 따르면, 해석이란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만 그것을 분명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 이야기는 다음번에서 다룰 오에 겐자부로의 「불을 두른 새」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파우스트』를 정확하게 읽었다면 그것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과정은 여성적인 것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파우스트 박사는 마지막에서 '마리아를 숭배하는 박사'로 소개되며, 천사들은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노라."라고 노래하며 책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가장 여성적인 것이 바로 가장 유럽적인 것

종교사학자 엘리아데도 『파우스트』를 가장 유럽적인 작품으로 소개합니다. 그는 가장 유럽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을 숭배하는 문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문화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저는 신혼여행으로 로마에 갔었는데,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타를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성모 마리아가 거인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40년

『파우스트』에서는 여성적인 것을 탐구합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해석이란, 정확한 해석은 텍스트를 행동으로 바꾸는 데에서 시작하므로, 『파우스트』에 대한 해석은 여성적인 것에 대한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여성적인 것만이 인류를 천상으로 인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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