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친한 후배가 '브런치(당시에는, 지금은 브런치 스토리)'라는 플랫폼에 도전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한 두 번 더 도전한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20대부터 알아왔고 복직한 후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서로의 깊은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글로 보는 후배의 이야기는 또 달랐다. 말로 다 담을 수 없었던 아픔이, 지나온 시간들이, 그리움과 눈물이, 필사적인 노력과 의지가, 그리고 성장의 시간들이 보였다.
당시에도 지금에도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4000명 가까운 이웃분들이 계시고 블로그를 통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많아서 굳이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배의 글을 읽으러 가입한 브런치의 다른 글들을 조금씩 보게 되면서 다른 분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블로그의 세계와 브런치의 일상은 조금 달랐다. 물론 브런치 스토리에도 소설 등의 픽션을 담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브런치는 뭐랄까, 일상을 담은 수필, 그러니까 미셀러니에 가까웠다. 블로그에도 일상을 담지만 좀 더 정보성인 글들이 좀 더 많은 것에 반해서 브런치 스토리의 글들은 나의 생각을 좀 더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일기장 같기도 하고 하나의 성장일지 같기도 했다.
블로그에서는 경어체의 표현을 사용했기에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하게 자꾸 다른 사람을 좀 더 의식하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또 일정한 틀에 갇히는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또 이미 나라는 사람의 노출이 되어 있어서 나를 잘 모르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블로그와 다르게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브런치 스토리가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나는 브런치 스토리에 어떤 글을 올릴 것이고 어떻게 작가로 데뷔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삶의 큰 두 가지 키워드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간절함과 다이어트 성공 후 유지였다. 코로나 시기 동안 마구 늘어난 몸무게와 여러 필요성으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이렇다 할 큰 변화는 없었는데 홈필라테스를 하면서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건강해지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달라졌다. 늘 공간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하다말다를 그치던 내가 나의 몸을 비우고 나서 꽉 차 있던 마음과 내 주변의 공간도 함께 비우기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글로 함께 나누고 싶었다. 브런치 스토리에서는 그런 마음을 담아 쓴 계획서를 승인해 주어서 나는 그렇게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막상 작가가 되어서 글을 올리긴 했지만 난감했다. 예상은 했지만 조금 더 막막했을 무렵 우연히 최리나작가님의 글을 읽게 되었고 이 분의 글이 유난히 더 따스하다고 느낄 무렵 #별별챌린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글로성장연구소에 가입하면서 나의 브런치 스토리 작가 생활이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나라고 했던가. 나는 글을 쓰고 싶어서 글을 쓰는 모임에 가입을 했다. 글을 쓰는 모임은 난생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을. 피아노를 좋아해서 피아노를 치는 모임에 가입했고, 영어 원서를 읽고 싶어서 원서를 읽는 모임을 만들었고, 운동을 잘 하고 싶어서 필라테스 모임에 참여했다. 그렇게 나는 어색하기만 했던 '작가'라는 호칭에 서서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여울 작가님'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살짝 오글거리는 느낌이지만 - '세상에! 내가 작가래!! 작가!!!!' - 처음보다는 훨씬 적응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어떻게 아셨는지 구독해 주시는 고마우신 분들이 계셨다. (물론 아직 스타 작가님들에 비하면 미미하다.) 글의 조회수도 엄청나진 않는데 가끔씩 10000이 넘었습니다. 20000이 넘었습니다. 하는 알람이 뜰 때가 있었다. 80000이 넘는 글까지 나와서 진심으로 놀랐는데 블로그 글에서도 이렇게까지 높은 조회수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일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두 글의 제목은 '딸아이 방문 열기가 두렵다 (brunch.co.kr)'와 '이제 딸아이 방문 열기가 덜 두렵다 (brunch.co.kr)'이다. 정말 사진조차 찍을 수 없을 정도로 난감하던 딸 둘이 쓰는 방에 대한 이야기가 이럴 줄은 나도 몰랐기에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미지수이다.
오늘 어느 분이 브런치 스토리 단골 주제에 대한 글을 쓰셨는데 #이혼 #파혼 #미니멀리즘 #아메리카노 #김밥 #영어공부 #유학 #이민 등등의 이런 키워드가 단골로 뜬다고 브런치 스토리 메인 선정팀 뜨끔하라고 하셨다. 사실 메인에 뜨고 완독률 높은 책들을 보면 이혼과 파혼에 대한 책들이 확실히 눈에 많이 뜨이긴 하다. 그래서 나는 그럼 쓸만한 자극적인 소재가 뭐가 있나 생각을 해 보게도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자극'이 아니다. '성장'인 것이지. 완독률 높은 분들의 글은 결국은 과거와 지금의 아픔을 딛고 혹은 겪어가면서 어떻게 극복하고 지나가는지에 대한 과정과 함께 그 아픔과 시련에 무너지지 않고 자라 가는 성장을 담고 있었다. 일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힘듦에 좌절도 하고 상처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려는 의지, 주어진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글에 담아 나누고 싶은 갈망.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보면서 울고 웃으며 또 내 하루를 돌이켜보고 내일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 브런치 스토리의 매력이자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여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고 그런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