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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22. 2024

문법 공부 대신 영어 문장을 통으로 외우다

하루에 한 문장씩 외우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 이전이기는 했다.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하던 중학교 3학년 가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종이신문을 구독했는데, 그 신문에 하루에 한 문장씩 영어문장을 설명하는 작은 칼럼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TV 프로그램조차 마땅치 않았다. 나는 종이신문을 그냥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것이 취미였다. 


우연히 발견한 영어문장 칼럼은 내게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 영어로 made it from the scracth라는 표현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정말 바닥부터 재료를 하나하나 긁어모아서 만드는 것을 뜻한다. 나는 정말로 영어의 불모지에서 하나하나 재료를 모아가면서 공부를 한 셈이다. 중간에 발음 코칭을 사흘 받은 것과 문법을 한 달 공부한 것, 그리고 고2 초반까지 한 눈높이영어를 제외하면 다른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칼럼을 가위로 오려내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칼럼이지만 오리는 동안 쓰인 문장을 중얼중얼 소리 내어 읽으며 외웠다. 'I have a green thumb.'이라는 문장도 그때 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영어에 관한 상식들이 내게는 전혀 없었다. 영어에 대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 지표도, 이정표도 없던 내게 이 칼럼은 새로운 방향키와 지식의 퍼즐조각들이 된 셈이다. 매일매일 그 칼럼들을 모아서 집게로 집어 두었다.


그렇게 다음 날 새로운 칼럼이 연재되면 그 문장을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전 날 외웠던 문장을 한 번 더 소리 내어 읽었다. 수요일에는 월요일과 화요일의 문장을, 목요일에는 수요일까지, 그리고 금요일에는 일주일치 문장을 모두 읽으면서 복습했다. 그렇게 한 문장씩 매일 늘려가기는 조금 부담스러우니까 다섯 개씩 끊어서 복습을 했다 그리고 한 달의 마지막 금요일에는 25개의 문장을 모두 복습하면서 소리 내어 읽고 외웠다. 6개월에 한 번, 1년에 한 번 모아둔 문장들을 모두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이때 해 보았다. 잘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보면 새로웠다.


그 외에도 밤에 자기 전에는 집에서 굴러다니던 5분 영어회화집을 따로 외웠고, 모아둔 영어칼럼은 여기저기 두고 화장실에서도 외우고 잠깐씩 다른 일을 하다가 쉴 때도 외웠다. 이렇게 3년 정도를 하니 모아진 문장의 양은 상당했다. 눈으로 보는 공부가 아닌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고 반복하는 공부는 무엇보다도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이 공부는 어느새 나를 영어 좀 하는 아이로 만들어 놓았다. 중학교 초 중반 때까지만 해도 애매하게 중상위권에 속해 있었는데 (중 1 첫 중간고사 때 54명 중 26등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졸업할 무렵에는 대략 평균 94점 정도까지 받는 어느 정도 상위권인 10 등 안에 진입했다. 중학교 졸업식 날,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반에서 완전히 상위권은 아니지만 일 년 동안 계속해서 조금씩 성적이 향상된 친구가 있습니다. 그 노력에 정말 칭찬을 해 주고 싶습니다." 나는 속으로 '우와, 대단한 아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는 딱히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만큼 중학교 때 우리 반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많았고 나는 매번 시험 때마다 붙여놓는 전교 상위 50등 명단 안에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까 91.4에서 92.3, 92.7, 93.4 점 같은 정도로 아주 서서히 상승을 하기 했긴 했다. 맘 잡고 공부했더니 확 치고 올라가더라 하는 그런 드라마틱한 상승세는 내 인생에는 정말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전반적인 성적이 오른 데에는 분명 영어의 상승이 한몫 거둔 것도 있었다.


이렇게 하루에 한 문장씩 외운 경험이 뒤에 다른 프로젝트로 이어질 줄은 정말 몰랐으니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그로부터 30년 후, 하루에 하나씩 외우는 문장, 줄여서 하하영이라는 타이틀로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하게 되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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