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테르 May 22. 2024

나만의 노트북에 세상을 두드리자


            

오전 10시, 흘러나오는 커피 향에 이끌려 들어간 집 근처 스타벅스 

'돌체라테 아이스 레귤러 사이즈로 한 잔 부탁드려요 '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며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톡토토토토톡. 토토토토토톡!

음악소리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들. 주위를 둘러보니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을 저렇게 빠른 손놀림으로 쉴 새 없이 치고 있을까?

어떤 이는 글을 쓰고, 다른 이는 자료를 검색하고, 또 다른 이들은 필요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탁자에는 노트북과 잔의 커피만이 놓여있을 그들은 모두 혼자였다. 홀로 커피를 마시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의 카페는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장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내고 사색을 하는 혼자만의 장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같은 장소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도 변해간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학원에 픽업해 내려주고 난 후 늘 근처에서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가장 편한 곳이 학원 앞 스타벅스 카페였다. 늘 그랬듯이 핸드폰을 보며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지루함이 밀려왔던 그 순간  카페 문이 열리고 세미 정장을 한 30대 여성이 들어왔다. 내 바로 앞에 앉은 그 여성은 익숙한 듯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탁자에 놓고 겉 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 흰색 긴 셔츠의 팔을 반쯤 걷어올리고 노트북을 펼쳐 눈높이로 세워 빠르게 무언가를 써내려 갔다.  머릿속에서 계속 자신의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적어 내려가고 있는 듯했다. 어떤 내용의 글일까. 직업이 작가일까 아니면 전문직일까?  뭔가에 집중하며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멋진 모습이 부러웠다. 보기 좋았다. '나도 저렇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 흐트러진 머리에 푹 눌러쓴 야구모자, 실루엣을 감추기 편안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카페 한 귀퉁이 앉아 시간을 때우기 위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핸드폰과 학원 전단지를 보며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자세를 이리 했다 저리 했다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반대편  거울에 비친 채 오버랩되었다.  왜 이렇게 서럽지. 

나도 다시 집중할 있는 일을 찾을 테야


"어머 정말! 이게 웬일이야"

5일 내에 온다는 브런치 공지대로 기다린 지 사흘 째 되던 날. 혹시나 하는 기대로 알림톡을 확인하던 순간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직  나로서 축하를 받은 것이 그 얼마만인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들뜬 마음으로 가족에게 톡으로 공유했다.

" 얘들아 엄마, 브런치 작가 됐어. "

미국에 있는 여동생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결혼 후 육아를 하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경단녀가 되었던 나는 내 이름과 나만의 세상이 너무 그리웠다. 

더 이상 나라는 사람의 미래가 보이지 않고 꽉 막힌 듯 뒤죽박죽 인 채로 사는 것 같았다.

내겐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어. ' 마음속에서 간절히 소리치고 있었다.


글을 써보자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지 일 년 만이었다. 

20년 만에 다시 잡은  펜을 부여잡았지만 책상 앞에 앉아 일주일을 보내도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았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즈음 서소문 역사박물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한다는 공지가 눈에 들어왔다. 신청할까 말까 고민만 일주일, 그래도 해보자 그리고 후회하자 시작해 보자는 마인드컨드롤을 하고 

모임을 시작했다. 첫날 글쓰기 수업에 참가한  15명의 소개와 글을 쓰고 싶은 저마다의 이유를 들으며 많은 교감을 느꼈다. 그 후 단 한 주도 빠짐없이 비슷한 마음을 가진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즐겁게 수업을 들었다.  잘못 쓰더라도 글을 써나가자는 마음을 갖고 꾸준히. 이미 글쓰기 수업을 지도하시는 작가님 그리고 신청한 분들 중에는 이미 작가이신 분들도 있었다 일주일에 1번 글쓰기 과제물을 서로 발표할 때면 너무나 잘 쓴 글을 듣고 내 글을 읽을 차례가 되면 부끄러움에 목소리 마저 작아지곤 했다. 때로는 이게 정말 글일까 일기 아닐까 아니 내 신변잡기 메모 같은데 하는 탐탁지 않은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글을 쓸 때마다 들곤 했다.

그러나 그런 글쓰기 수업과 모임 구성원들의 영향으로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결혼 후  지난 20년 동안 나 자신의 결과물을 만든 것이 없다는 사실로 더는 공허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새기며 글을 써보려 했다. 


손으로 몇 백장의 리포트 과제를 제출했던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난 신문물이던 컴퓨터에 익숙지 않았다. 또한 기계치에 가까웠다. 새로운 기술을  애써 배우고자 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나는 구세대에 가까운 중간 세대 끼인 신문물 세대였다. 졸업 후 광고회사 기획 담당을 맡아 일을 하며 매일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해다. 회의실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영감으로 얻기 위해 다른 제품의 광고와 다른 나라의 다양한 CF

도 보고 신문과 잡지를 읽었다. 순간순간 눈에 띄는 기사나 단어가 발견되거나 번뜩이는 소재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지에 적었다. 그렇게  자료를 모으다 보면 수많은 메모지와 수첩 그리고 공책들이 쌓여갔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커져갔다. 시험을 안 둔 학생처럼 하루도 머릿속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프로젝트가 끝나 

광고가 완성될 때면 힘들었던 만큼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었다. 아쉽게도 퇴사를 하면서 그 많았던 기록들은 

보관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글을 시작하면서 다시 책을 읽게 되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도 생겼고 나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여유도 찾았다.

그토록 소망하던 멘토와 같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브런치라는 글 쓰는 플랫폼도 알게 되었다. 

나만의 공간도, 나만의 시간도, 나만의 펜도 그리고 나만의 글감도 필요해졌다. 

방 안 책상에 고정된 온 가족이 공유한 컴퓨터에 글을 쓰다 보니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사용할 수 있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담을 나만의 노트북도 필요하게 되었다. 바로 네이버로 노트북을 검색해 보았다. 삼성과 LG 그램 13인치 흰색 노트북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나도 시대 변화를 따르는 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브런치 작가 합격 공지를 받은 후 나는 남편에게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이젠 나도 나만의 노트북이 필요해.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 

남편 왈 " 그래 내가 사줄게. 어떤 기종이 좋은데?"

"난 들고 다니기 가볍고 타자 치기 편리한 삼성이나 LG 그램 13인치가 좋고 깔끔한 흰색이 좋아 "

남편 왈 " 알았어 내가 제일 좋은 기종으로 살게" 

순간 너무 순조롭게 대답하는 남편을 보니 불안감이 밀려왔다. 남편은 지나칠 만큼 매우 합리적 마인드를 가져 물건을 살 때 나와는 달리 특히 외관의 디자인보다는 가격과 기능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기다린 지 3주일이 지났다. 너무 늦는 것 아닐까 

두둥!! 너무  좋은 기능인데 합리적 가격으로 구입했다며 남편이 퇴근하면서 들고 온 검은색 노트북 가방

뭐지?  지퍼를 열어 꺼내보니  Lenovo 15인치 검정 색 노트북 이 들어있었다. 

아 뭐야. 난 너무 황당해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원하는 노트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남편은 왜 이 노트북이 얼마나 좋은 건데.  하며 속을 긁는다. 이러려면 처음부터 어떤 노트북 원하는지 묻지나 말던지. 기대와 너무 다른 노트북이라는 것보다 남편이 내 의사를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는 생각에 내 말을 존중하지 않았던 것 같은 마음에 속이 상했다. 공감력 제로인 남편은 자신이 선물해 준 노트북을 마음에 안 들어하는 내게 서운해했다. " 아 몰라." 애꿎은 노트북은 쳐다도 보지 않은 채 2주일이 흘렀다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려 하니 딸아이가 한 시간 정도 복사를 하고 보내야 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거실 한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검정 가방 속 노트북을 꺼냈다. 어디 사용해 볼까

15인치라 좀 무겁긴 했지만 화면이 적지 않아 편했고 타자도 그런대로 잘 쳐졌다.  물 마시러 나온 아들내미가 그 광경을 바라보더니 "엄마 드디어 노트북 쓰는 거야. 이거 좋은 기종이야 난 좋은데 왜 맘에 안 들어 아빠가 이거 사려고 검색 얼마나 많이 했는데 그리고 나에게도 물어보고 추천해 달라고 해서 함께 했는데.." 

아들 녀석의 그 말을 들으니 내가 너무 옹졸했었나 하는 마음이 슬며시 들었다. 어차피 노트북은 외관보다 

내용이 더 중요한데 하는 생각과 그 몇 주 동안 남편에게 툴툴대던 내 마음이 미안함으로 바뀌어져 갔다.

 '그래 이 노트북 잘 쓰고 나중에 더 많은 글 쓸 때 내가 원하는 색깔  브랜드로 마련하면 되지' 


이제 나만의 노트북이 생겼다. 

내가 쓰는 글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서 저장할 수 있는 노트북이

'시는 줍는 것이다'라는 어느 힌 시인의 시 구절처럼 

내 주변의  소소한 일상들을 우리들의 이야기를 모아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이제 나도 이따금 길 건너 스타벅스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두드린다 

이런 내 모습이, 예전 내게 자극을 주고 의욕을 주었던 세미 정장의 그녀처럼 자신을 잊고 사는 그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는 모습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톡토독 톡토 톡토도독.

양손을 피아노 건반 치듯 쉴 새 없이 두드리고 있다.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꾹꾹 두드리며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가려 한다.

나만의 노트북에 다양한 세상을 담기 위해.

이전 08화 나만의 언어로 세상너머를 소통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