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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테르 May 24. 2024

나만의 글로 내 인생의 책을 만들자

 

어린 시절 난 얌전했지만 의외로 도전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이라크에서 특파원 이진숙이었습니다 "

MBC 뉴스에 나온 한 컷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종군기자 

내 눈에 비친 너무나 멋진 여성 기자였다. 그날 이후 내 멘토가 되었다. 

내 꿈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세게 곳곳에서 일어나는 진실을 전하는 기자 곧 특파원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나이가 들어가면서 꿈은 누군가에겐 이루어지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때론 어떤 이에게는 그저 꿈으로 남는 안타까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꿈은 저마다의 마음 속 한편에는 남아 있다.


얼마 전 백남준 아트센터의 도슨트 양성 교육 과정을 운 좋게 신청해 두 달 동안 수강할 기회가 생겼다.

뭔가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고자 우연히 선택한 하나의 도전이었다. 생소한 8주 동안의 새로운 분야의 수업은 예상보다 전문적이었다. 그러나 한 수업 한 수업을 통해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친근하게 다가왔고,  난해했던 현대 미술의 작품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의 시간이 되었다. 경단이 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가정이나 가족이 아닌 타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할 수 있거나 좋아하는 문화나 취향 등 비슷한 결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상대에 대한 부재였다. 수업 첫날 예상보다 많은 인원에 놀랐다. 남녀노소 70여 명. 2층 적지 않은 세미날실이 꽉 차 100분 수업 시간 내내 열기가 차올랐다. 박물관장을 비롯 현대 미술 현직 교수들 그리고 학예사. 전문 도슨트의 강의가 매 시간 이어졌고 수강생들의 열정도 예사롭지 않았다. 


오랫 만에 전문 서적을 읽고 논문들을 찾아 발표하던  대학원 시절이 기억났다. 학업과 일을 겸하며 참 열심히 지냈던 때였다. 힘들기도 했지만 목표를 위해 시간을 쪼개며 버티던 그 시절이.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40년 지기 친구는 그냥 시집이 나가라고 조언하기도 했지만  난 참 행복했다. 내 꿈이 있었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의 회사 생활 후 나만의 것을 찾고자  다시 돌아온 대학원은 내겐 큰 의미가 있었다. 나만의 글로 논문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내고 싶었다. 그 책이 학업을 이루려 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또한 오랫동안 대학의 필수 과목의 필독서로서 이어지길 그리고 논문을 쓰는 이들에게 참고 문헌이 되길 희망했다. 그렇지만 경제적인 상황으로 준비했던 유학이 포기되었을 때 꿈을 모두 내려놓고 포기하듯 결혼이라는 다른 인생을 선택했다. 이겨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변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절망이 가득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부르짖었다. 더이상 도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20여 년 동안 난 내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사회적으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어느 날, 틀에 박힌 루틴에 숨이 막혔다. 매일 똑같은 공간. 만나는 같은 사람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끝내고 싶었다 봉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조금씩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아낌없이 쓰고 싶어졌다. 고장난 시계처럼 멈췄던 내 인생 시계를 맞는 시간으로 조금씩 맞추고 싶어졌다.

 시간을 나눔을 하면서 다시 내가 나임을 깨닫는 신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가정으로부터의 공간이동과 가족으로 부터의 분리. 봉사라는 소중한 시간 나눔을 통해 난 다시 내 이름을 찾아갔고 내 일을 찾아갔고 열정을 되찾아 갔다. 연구 봉사를 하며 새삼 내 전공을 인식했고, 교육 봉사를 통해 교육자로서의 가르치는 것에 대한 보람을 느꼈다.  각성할 수 있다는 것은 무딘 일상에 대한 축복이라 할 수 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몸에 익힌 습관처럼 무뎌진 모든 것들이 다시 감각적으로 살아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대중 가요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는 말처럼 다시 깨어나려 한다. 대학원 시절의 꿈과는 다르게 전문적인 책은 아닐지라도 소소한 주변의 일상을 담은 그리고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경험이 스며든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그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어 사람들의 가방에 늘 지니고 다니며 읽고 싶은 사람냄새와 웃음이 배어나는 책을 짓고 싶다. 이제 다시 잊혀지고 무뎌진 펜을 부여잡고 나만의 꿈이었던 나만의 글을 나만의 글감과 아이디어를 담아 인생의 책을 만들어 내 인생의 배낭에 넣고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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