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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Jan 11. 2024

정신과를 다닌 지 4주 차 됐습니다.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대하여


"연말과 연초에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번주 월요일, 3 만에 만난 의사 선생님은  근황부터 물어보셨습니다. 여전히 예리한 눈빛으로,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는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실제로 연말, 연초에 새로운 부트캠프를 시작해, 모든 프로젝트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저는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바빴다고 말씀드렸지요. 의사 선생님은 지난 문장 만들기 검사지를 통해 저의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처음엔 문답지를 보면서 제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으면 동굴 속에 있는다고 쓴 의미를 물어보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 심연을 동굴로 표현한 건데요. 실제로도 동굴에 있는 것처럼 숨습니다.


친한 지인들이나, 제 인생에 별 상관없는 사람들이 제게 상처를 주면, 저는 동굴에 숨는 것처럼 제 방 침대에서 벗어나질 않습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며칠 동안 나가질 않고, 자주 연락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연락하질 않죠. 주기적으로 이런 것 같아요. 그래서 저와 정말 친한 친구들은 이런 제 습성을 알고, 잠수를 탈 때마다 기다려 줍니다.




지금 제 상태는 일전에 말했던 것처럼, 뿌리는 깊지만 스트레스가 심해 불안이 높아진 상태입니다. 일전에 소개해 드린 이 그림은 용어는 정확지 않지만, 저런 의미의 정신의학 용어들이었습니다. 저는 두 번째로 큰 마름모였고요. 외부 자극(스트레스)이 심해 많이 작아져 있는 상태이고, 그에 따라 꿈, 이상적 가치와 사회적 지지가 아주 근소하게 작아져 있었습니다. 가장 작아진 부분은 자아와 외부 자극입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의사 선생님은 명백히 제가 '우울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전부터 그래왔을 수도 있을 거라는 첫 진료에서의 선생님의 예상이 맞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우울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혼자 외로이 외할아버지댁에 살아야 했던 저는 꽤 우울해했습니다. 수능을 보고서 원하는 성적이 나오질 않아, 세상이 무너질 듯이 운 적도 많고요. 공부를 하다가 보충이 더 필요한 과목이 있는데, 엄마가 힘들까 봐 말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우울해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엄마가 직접 학원을 알아봐 줬다는 친구들의 말에 더 우울해졌고, 그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우울증은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요.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더 많은 혈액을 방출시켜 호흡과 맥박이 증가한다고 하네요. 저는 이 코르티솔이 너무 높아져서 작년에 공황장애가 심하게 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코르티솔이 높아지면 불안과 우울을 높여 불면증과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하네요. 네, 저도 수면장애가 있었고, 새벽에 깨면 우울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복용하고 있는 약은 세로토닌을 높여주고, 건강한 도파민을 자극시켜 주는 약입니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감정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실제로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불안감과 분노가 높아지고, 집착장애, 패닉이 온다고 합니다. 공황장애와 정말 비슷한 증상이지요. 추측하건대, 저는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패닉이 잘 오고, 분노조절이 안되기도 하고, '성공'이라는 강박증이 생긴 것 같습니다.




우울증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최근에 엄마가 제게 정말 깊은 상처를 준 발언 때문에 더 기분이 좋지 않았죠. 엄마는 제게 술주정으로 "네 애비를 닮아서 정신병이 있는 거야. 네 애비가 조현병이었잖아. 너도 조현병 피가 있어서 정신병이 있는 거야." 저는 이 말에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요 근래에 엄마와 자주 싸운 이유도 저 발언 때문도 있습니다. 부친은 제 트리거이자, 트라우마니까요.


다시 돌아와서 의사 선생님은 평소에 엄마와 사이가 어떻냐고 말씀하시더군요. 표면적으로만 좋지,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왜 사이가 좋지 않냐는 질문에, 저는 잠시 생각을 하고 이내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희 엄마는 제가 분신이 아니고, 개인이라는 걸 몰라요. 부모는 자식한테 이래도 된다고 말하거든요." 이내 의사 선생님도 자식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이해는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길래,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제가 강박이 있는 건 저희 엄마 때문이에요. 오히려 저는 약한 수준이고, 저희 엄마는 저보다 더 심합니다. 물건이 제 자리에 있지 않으면 화를 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조만간 저희 엄마도 저와 같이 정신과에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참, 여러분, 불안장애는 우울증보다 흔한 명백한 질환입니다. 아래 세 가지에 해당된다면 정신과에 꼭 가세요. 기록 따위 남지 않습니다. 정신과 기록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법원과 정부뿐입니다. 회사나 다른 곳에서 기록을 요구한다면 불법이니 경찰에 신고하세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들은 꽤나 친절하답니다. 겁먹지 마시고, 바로 가세요. 검사비와 약물 처방도 엄청 저렴합니다.


일전에 독일의 유명한 대학의 정신의학 교수가 말하는 불안장애에 관한 인터뷰를 봤습니다. 불안장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하네요. 광장 공포증, 사회적 불안장애, 공황장애로요. 매우 흔하다고 하더군요.


사람 많은 대중교통이나 길거리를 보고 숨을 헐떡이고, 저 사람들에게 깔려 죽을 것만 같다.

다른 사람에게 지적이나 비판을 받으면, 쥐구멍에 숨고 싶고 말을 잘 못하겠다.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사물을 보고 공포심을 느낀다. 저 대상에게 살해당할 것 같고, 이렇게 숨을 쉬다가 심장마비나 뇌출혈이 올 것 같다.




불안장애가 생기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인간이 수렵 채집을 하던 시절, 그때는 야생동물에게 죽을 위험이 80%가 넘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율신경계가 활발히 움직여, 언제든 도망치게 만들었다는군요. 그러니까 신경계의 영향이라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야생 동물에게 죽을 위험이 10% 미만이니, 그럴 필요가 없는데 다른 곳에서 불안을 느끼는 거죠. 명백히 호르몬을 통한 신경계 자극입니다. 이처럼 불안장애도 치료가 필요한 질환인데, 아직 세계적으로 불안장애는 별 게 아닌 걸로 간주하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서 본 그 독일 교수님도 국가적으로 불안장애도 치료 질환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권고하신 걸 봐도 그 비율이 상당합니다.




아무튼 저는 그래도 뿌리가 깊은 상태이기에, 심한 우울증이 아니라고 자위해 봅니다. 그나마 약한 약물로 잘 지내고 있고, 나아지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좀 더 지켜보다가 하루에 두 번 먹을 약을, 한 번으로 줄여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좋은 신호인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연초에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으면서, 날 선 마케팅 감각을 다시 세우고 있고요. 하루하루 리더십을 키우면서 대기업 임원이 된 저를 상상합니다. 곧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요.



그래서 요새 저는 꽤 잘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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