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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Jan 20. 2024

정신과를 다닌 지 5주 차 됐습니다.

통제 성향에 대하여


"엄마도 이해 못 하는 걸, 그 사람은 이해해 준다고.

엄마가 나를 뭘 이해해 줘? 비난만 하는 주제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내 인생에서 제발 꺼져. 필요 없으니까."



정말 독해 보이는 저 말은 제가 실제로 엄마와 싸우면서 했던 말입니다. 이번주 월요일에 정신과를 다녀왔는데요. 정신과를 가기 불과 며칠 전에 엄마와 크게 육탄전을 벌였습니다. 실제로 발작이 올 뻔했지만, 약을 먹은 상태여서 다행히 구급차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간략한 정신과 일지와 엄마의 통제 성향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평일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와 같이 부트캠프를 착실히 듣고, 프로젝트를 총괄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와중이었고요. 엄마는 일을 끝내고 시장을 보고 온다고 했다가, 갑자기   뒤에 다시 전화 와서는 신설동에서 일하는 옛날 동료와   잔을 마신다고 하더군요. 알겠다고 하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10 정도가 되니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오시더군요. 거실에서 혼자 x팔저팔 하면서 욕을 하더니, 갑자기  방으로 들어와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엄마는 불만이 있으면 맨 정신으로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고 매우 폭력적으로 본인의 기분을 표출하지요. 제가 이런 모습을 어릴 때부터 봐와서 그런지, 제게도 이런 아주 못된 습관이 생겼습니다. 저희 엄마는 제 전 남자친구를 극히 싫어합니다. 우선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저를 대하는 태도를 싫어하시고요. 특히 전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돈 없는 졸부 같은 행색에 건방지다고요. 그리고 일전에 전 남자친구와 싸운 이야기들을 엄마는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남자친구의 언행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어 혐오하는 수준으로 싫어합니다.




저희 엄마는 다시 만나는 낌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더군요. 아무래도 제가 외박을 잘하는 성격이 아닌 데다가, 자꾸만 주말마다 어디서 자고 오는지를 말을 안 해주니 눈치를 금방 챘습니다. 엄마는 제게 맨 정신으로 몇 번을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새끼는 네 인연이 아니라고, 얼른 헤어지라고요. 더 정들면 헤어지기 쉽지 않으니 지금 끝내라고 하더군요. 그때의 언행이 네 아비와 닮았다고, 그런 새끼는 만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사실 엄마의 말은 백 번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성당에 가서 기도를 엄청 했고요. 분명히 그날, 그 시점에 나타난 건 아버지의 응답이 맞는데, 왜 하필 그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기도로 하소연을 했습니다. 1년 6개월 전, 제게 크게 잘못했던 전 남자친구와 쌍욕을 오가면서 정말 안 좋게 헤어졌었고요. 그때 이후로 남자란 족속은 만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몇 년 뒤, 정말 기적같이 우연히 다시 만난 뒤로는 저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는지 그 사람의 방식대로 저를 아주 소중하게 다뤄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헤어진 그날, 어디다 말을 할 곳이 없으니 엄마에게 말한 것들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네요.




엄마는 다시 만나는 걸 안 뒤로, 마음이 좋지 않았는지 술을 진탕 마시고 제게 시비를 걸었고, 이내 육탄전이 시작됐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제가 지구대를 왔다 갔다 거릴 때가 시작이었습니다. 저보고 술 마시고 정신병자라고도 했고요. 네 아비를 닮아 그 피가 있다면서, 막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말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속상해서 하는 말들이었겠지만, 우울증 환자에게 자살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쓰레기 같은 말들을 하더군요. 다시 분노가 올라오지만, 예전처럼 술을 마시고 분노를 표출하지 않으려고 정신을 꽉 붙들고 있습니다. 약을 복용하면서요. 저는 이런 관점에서 부모는 아무나 되지 않도록 국가적으로 표준 규격이나 가이드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아이는 태어남을 당한 거지, 선택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아무튼 정신과에서 저번주는 어떻게 지냈냐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이런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차근차근 말하려고 우선 엄마가 강박증이 심하다는 정도만 말했습니다. 전 남자친구를 싫어한다는 점을 말했고요. 우선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도 의사 선생님은 저희 엄마가 '통제 성향이 강하다.'라고 진단하시더군요.


맞습니다. 제가 대학교 때부터 엄마와 육탄전을 벌이면서 치열하게 싸운 이유는 저를 통제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표면적으로 제가 사춘기를 20대 때 푼다고 생각하지요. 그 말은 틀렸습니다. 정확히 엄마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당신 머리로는 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걸 알지만, 피붙이가 저밖에 없으니 제게 집착을 할 수밖에 없지요. 상황은 이해 가지만, 저는 명백히 엄마와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점들을 제가 지적하면, 엄마는 크게 분노하고 자식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자식이 왜 당신 소유물로 생각하는지 이해되질 않습니다.




흔히 가스라이팅이라고 하지요. 저희 엄마는 제게 늘 비난을 하면서, 저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주입시킵니다. 하지만 저는 사회적으로 누구보다 똑똑하고, 알아서 잘 헤쳐나가는 주체적인 여성입니다. 이 관점을 엄마만 모르시더군요. 가족이 제 최약점을 들고 후벼 파내면서 조종한다는 건 기분이 꽤나 엿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와 표면적으로 사이가 좋지만, 막상 저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울증이 온 건 엄마의 영향이 80%라고 추측합니다. 실제로 엄마한테도 그렇게 말했고요.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엄마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엄마의 인형이 아니니까요. 사물이 아닌 사람을 통제하려고 하면 망가집니다. 바로 저처럼요.




어쨌든 저는 저번에 받은 문장 완성 검사지 결과를 토대로 몇 주간 계속 상담을 할 예정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공한 여성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인데요. 제가 이렇게 살아가려고 할 때마다, 저희 엄마는 제 바로 앞에서 길을 막네요. 제발 떨어져서 살고 싶습니다. 엄마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갑갑합니다. 제발 다시 어디로 가셨으면 좋겠는데, 상황이 여의칠 않네요.


한 번만 더 다시 저를 건든다면, 정말 엄마 손을 끌고서라도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하려 합니다. 예전부터 늘 생각했던 것이 저희 엄마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것이었는데요. 자식 된 도리로 그 정도까지 가기 전에, 정신과 상담을 권유하려고 합니다. 사실 저보다 아픈 건 제 엄마니까요.



저는 엄마와 닮은 자식일 뿐,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제발 세상 모든 엄마들이 이 부분을 아셨으면 좋겠네요. 자식한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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