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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트라 Feb 03. 2024

정신과를 다닌 지 2개월 됐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강박의 특징에 대하여


"지난주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응급실 이후로 평안하셨나요?"



상을 치르느라 1.5주 만에 만난 정신과 선생님이 하셨던 말입니다. 2주 전에 저희 엄마는 응급실에 다녀왔습니다. 낮술을 하고 귀가하려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에 누가 어깨를 치고 갔나 봅니다. 그대로 발이 걸려 심하게 넘어졌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난주에는 저도 휴식이 필요해, 정신과 일지를 2주 치를 한꺼번에 쓰게 됐습니다. 오늘은 제가 갖고 있는 강박의 특징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엄마의 잇몸이 찢어지고 광대에 쓸린 상처가 생겨 피가 철철 쏟아져, 지나가던 행인 분이 신고를 해줬나 봅니다. 저는 태평하게 전 남자친구 집 근처에서 혼자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요. 엄마 번호로 2번 정도 전화가 왔습니다. 분명히 술에 취해 전화해서 술주정하려는 것처럼 느껴져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모르는 번호로 다시 한번 전화가 왔고, 그다음에는 작은 외삼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가 응급실에 있다고요. 순간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마시던 술이 확 깨더군요. 지금 여기서 감정적으로 굴면 해결되는 게 없었지요.


저는 갑자기 열이 나서 그 자리에서 후드 티를 벗고 반팔만 입었습니다. 먹던 음식을 빨리 포장해 달라고 하고, 계산을 하고, 빠르게 전 남자친구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던져놓고, 옷을 다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택시를 부르는데 그날따라 왜 이렇게 오래 걸리던지요. 지나가던 빈차를 부르고 고대 안암병원 응급실로 빨리 가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저희 엄마는 인사불성이 돼서 구급대원 분을 때리려고 하고 있더군요. 구급대원 분들에게 3분만 시간을 달라고, 잠깐 나가 계시면 진정을 시켜놓겠다고 했습니다. 자리를 비우는 걸 보자마자, 엄마에게 바로 정신 차리라고 여기 응급실 앞이라고 사자후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오니까 그나마 정신을 조금 차리더군요. 집에 가자고 난리를 치길래 잇몸이 찢어져서 안된다고 치료를 받고 가자고 진정을 시켰습니다.


구급대원 분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또 때리려고 하길래, 제가 힘으로 엄마 상체를 압박했습니다. 그렇게 응급실 주차장 앞에서 실랑이를 하고 나서야 엄마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응급실 안에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계속 엄마가 사람 죽이려고 한다고 난리를 쳐서 엄마를 움직이지 않게, 제 다리로 엄마 상체를 누르며 경찰을 불러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랬더니 직접 신고하라더군요. 기가 막혀서 "지금 여기 진정시키고 있는 거 안 보여요? 보호자가 불러달라는데 신고 하나 안 해줍니까?"라고 사자후를 지르게 만들더군요. 어찌어찌 4~5시간 만에 치료를 잘 받고 집에 같이 갔다가, 저는 그날 집에서 안 잤습니다.




그로부터 1주 뒤에는 제 의붓오빠가 하늘나라로 가버려서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고, 2월이 돼서야 정신과를 다시 갔습니다. 약 처방만 받고 가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진료를 보게 됐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저 첫마디를 물어보시고, 저는 잠시 침묵하다가 의붓오빠가 죽어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고 대답했지요. 어떤 사이인지 간략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지금 제 상태는 언제 괜찮아질지 모르겠다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잠깐이나마 혼자 있을 때 괜히 울컥해서 감당이 되질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여타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환자에게 공감을 해주는 분인지라 어떤 심정인지 금방 아시더군요. 그리고는 지난번 설문지를 보시면서 제게 '항상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라고 답했는데, 무슨 이유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친오빠나 의붓오빠나 둘 다 본인들만 생각하는 경향이 심해서 제가 장녀 역할을 해야 했어요. 늘 부모님이 심하게 싸우는 걸 본 건 저뿐이거든요. 그래서 정신을 항상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제가 실수하거나 무너지면 아무도 부모님을 지켜주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젠 정말 장녀가 됐네요."




다른 질문도 주셨습니다. '언젠가 이 사람이 날 배신할 것이다.'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는데, 무슨 뜻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항상 솔직하고 정직한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제가 사람을 잘 믿는 편인데, 언젠가부터 그 사람들은 제 신뢰와 친절함을 이용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실제로 배신을 많이 당했고요. 그래서 이젠 사람을 50%만 믿습니다. 최근에 깨달은 건데, 제 마음의 벽이 성벽처럼 두껍더라고요. 그 성벽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관대한데, 성벽 밖에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합니다. 굉장히 적대시하고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요."


, 저는 진짜  신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을 덧붙였습니다. "선생님, 그래서 저는 사람을 믿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려요. 다른 사람들보다  년을  관찰하더라고요.  신뢰를 받을만한 사람인지 계속 검증하더라고요." 그러자, 선생님 자신도 그렇게   같다고 하시길래 전문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공적인 자리이지만요.




저는 항상 중심을 잡고 있어야 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차라리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려도 다시 올라서면 괜찮을 텐데, 올곧은 저 큰 나무처럼 버티고 있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에너지를 크게 쓰고 있습니다. 누군가 제게 톱질을 하면 생채기가 바로 나지요. 그래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제 뿌리를 더 깊숙이 내립니다.


저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픈 티도 잘 내지 않습니다. 회사에서도 생리통이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심한데도 약을 3알씩 먹어가며 버텼던 저입니다. 정말 미련하고 악착같지요. 하지만 이게 제 생존법입니다. 제 뿌리를 드러내 보이는 순간, 금이라도 본 것 마냥 다 뜯어가려고 하니까요.




세상은 제게 늘 정신 차리라고 합니다. 오로지 제가 쉴 수 있었던 때는 소꿉친구를 만났을 때나 저 혼자 있을 때뿐입니다. 부모님과 있어도 저는 휴식을 취할 수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건 제가 링거를 맞을 정도로 아플 때뿐입니다. 누군가는 제 세상이 너무 가혹하거나 혹독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좀 쉬어도 된다고 하지요.


그건 본인이 장녀가 아니라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장녀들은 쉴 수가 없지요. 늘 부모님을 돌봐야 하니까요. 효심이 지극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난 첫째 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런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저는 막내딸이지요. 하지만 제 부모님은 저를 장녀로 생각합니다. 당신들의 아들 새끼보다 제게 더 의지합니다.




언젠가 쉴 수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은 늘 저에게 게으른 배짱이가 아니라, 느긋한 배짱이가 되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쉴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 걸까요? 정신과 약에 의존하지 말라는데, 사실 저는 매우 약한 우울증이라 강도가 세지 않습니다. 약국에서 파는 종합감기약 정도의 강도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제가 사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처럼 올곧고 정직해야 사람 대우를 받는 거라고, 그래야 큰 일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어릴 때부터 배웠습니다. 이게 이천 서家의 정신이니까요. 저는 이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당신들과 사는 세상이 다를 뿐이지요.



제 세상은 저 멀리 오아시스가 보이는 사막 같습니다.

정신 차리고 걸어갈 수 있다면 물을 마실 수 있지요. 그게 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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