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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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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May 10.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탄

8.

시간은 계속 빠르게 흘렀다. 탄은 3학년이 되었고, 나는 2학년이 되었다. 나와 탄은, 전보다 더욱 자주 만났다. 자주 만나는 만큼, 나는 탄에 대한 것을, 탄은 나에 대한 것을 더욱 많이 알게 되었다.

-형은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해?

-어렸을 때부터, 맞아가면서 하면 이렇게 돼.

탄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내가 형만큼 하려면, 형 맞은 거에, 두 배는 더 맞아야겠는데.

-너가 지금 생각하는 거에, 두 배만큼은 더 맞았을걸.

그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사뭇 진지했다. 탄도 이를 의식했는지, 금방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능청을 떨었다.

-이럴 때는 새까만 게 참 좋다니까. 멍들어도 딱히 티가 안 나.

-누가 때렸는데?

-아빠가. 너 우리 아빠 못 봤지. 우리 아빠는 북극곰을 찢어.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런 얘기 안 하지?

탄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안 하지. 너니까 한 거지.

나니까? 탄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던 걸까. 나라서? 나에게 탄은 분명 그런 사람이 맞는데, 근데 탄은? 나는 탄한테 그런 사람이었던가? 혹시 맞닿아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나는 탄에게 뭘 해줬지?

  -형.

  -어?

  -형 대학 가면, 나랑 목욕탕 갈래?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그래, 그러자.

한차례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을 먼저 깬 쪽은 탄이었다.

  -너 대학 갈 거지?

  -아무래도?

  -그럼 공부 열심히 해서, 나 간 데로 와. 그러면… 음, 그러면… 술 사줄게.

  -형이 어딜 갈 줄 알고. 갑자기 수능 망해서 저기 이상한 데로 가면 어떡해.

탄이 내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그럴 일은 없고 임마. 어딜 가도 내가 간 데만 오면, 입시는 무조건 성공한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반박은 따로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묘하게 열받네…

그때부터 죽어라 공부를 했다. 이건 할매를 위해서도 아니었고, 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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