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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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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May 11.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탄

9.

늦게 시작한 공부는, 인간관계와는 다르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내가 살면서 처음 가져본 목표였으니까.

어려움이 있을 때면, 탄은 귀신같이 알고 날 찾아왔다. 그러고는 문제를 해결해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런 탄을, 내가 먼저 찾아갔던 건, 그 해 9월이 처음이었다. 그날은 9월 모의고사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나는 탄을 만나러 학원을 들렀고, 탄은 학원 교실에 홀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는 탄이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던 탓에, 치성이라도 드리는 줄 알았다. 살금살금 탄을 향해 걸어가 등에 손을 올렸을 때가 되어서야, 어딘가 탄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탄이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의 눈과 탄의 눈이 맞닿았을 땐, 탄의 눈에서는 불꽃이 일렁였다. 뭐랄까 그때의 탄의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 본 엽총에 맞은 호랑이 같아 보였다.

-아.

형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막 울었다. 쥐고 있던 풍선을 손에서 놓친 어린아이처럼, 생명을 다해 가는 강한 호랑이처럼. 삶을 오기로 살아오던 사람같이.

  -주ㄱ…ㅇㅣㄹ거야… 죽…ㅇㅡㄹㄱ거야.

탄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같은 말만 반복해 댔다. 탄의 목젖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응어리져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아듣기 힘들었다.

  -형 잠깐만.

나는 축 늘어진 탄의 몸을 이끌고, 밖으로 향했다. 탄의 몸에 손을 짚을 때마다, 이따금씩 탄은, 고통에 찬 신음을 나지막하게 뱉었다. 밖에 나와서는 산책을 했다. 탄이 진정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날씨는 조금 쌀쌀했다. 가로수에 매달려있는 나뭇잎이 울긋불긋하길래, 혹시 탄의 몸도 저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형.

  -어?

  -내가 죽여줄까.

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누굴?

  -형네 아빠.

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담배를 물었다.

  -어… 이게 되게 일상적인 대화는 아닌 거 알지?

형은 곤란한 대화를 피하려 할 때마다 담배를 꺼내 무는 습관이 있다. 이를테면, 마술사가 풍선을 강아지로 만들기 전에, 언제나 습관처럼 하는 손동작 같은 거라고 해야 될까. 형이 습관처럼 하는 행동을 하면, 나는 습관처럼 씩 웃고 대답을 하지.

  -응,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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