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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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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May 16.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탄

13.

수능이 끝나고, 탄이 원하던 학교 세 개 중, 두 학교를 붙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두 학교 다 무척 좋은 학교였기에, 나는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들었지만서도, 큰 이변 없이 수능을 마쳤던 탄이었기 때문에, 나는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학원에 향했다.

  -이야, 쌤 인물 하나 나와서 좋으시겠어요. 내년에 학원 홍보 확실하겠는데요?

  -아, 탄이? 그치. 탄이 시험 잘 봤지.

  -뭐야, 반응이 왜 그래요?

  -탄이 재수하잖아.

  -네?

카운터에 앉아있는 선생님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시험 끝난 다음 날, 탄이네 아버님이 학원 오셨었어.

심장이 철렁하고 가라앉았다.

  -아.

  -뒤에는 대충 알겠지? 탄이네 아버님 이쪽으로 유명하시잖아…

선생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억을 간신히 더듬어, 곧장 탄네 집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자, 나왔던 건 탄이 아닌, 탄네 아버지였다. 평소에 형이 묘사했던 것에서, 크게 다를 것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속에서 '이 씨발새끼야'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척추를 타고 올라왔지만, 도무지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누구니?

그가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탄이 형, 친군데요.

  -탄이 지금 공부한다.

짧은 말을 남기고, 형네 집 문이 쾅하고 닫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탄을 만날 수 있지? 탄은 괜찮나? 정신적으로? 아니 육체적으로? 혹은 양쪽 다 아니라면? 불그스름한 멍이, 검은 탄의 몸을 뚫고 온몸을 뒤덮고 있다면? 나는 그런 형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겁을 먹지 않을 수 있나? 앞으로 탄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면? 나는 평소처럼 살아갈 수 있나? 아니 살아갈 수 있나? 눈앞에 있는 문만 부수면 형을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가? 칼? 아니면 망치? 사람을 사서, 탄네 집으로 쳐들어 가야 하나?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도무지 한 곳으로 모이지 않았다.

한참을 서서 온갖 생각을 하던 내가 결국 선택했던 건, 야속했지만, 칼과 망치 따위를 잡는 게 아니라, 조용히 학원에 가서 펜을 잡는 것이었다. 탄이 떨어진 학교를 목표로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래야 탄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래야만 내가 탄을 구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탄을 살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살 수 있다 탄은 행복할 수 있다 그래야지만 탄이 내게 기댈 수 있다 그래야지만 내가 탄에게 기댈 수 있다 그래야지만, 씨발 그래야지만.

어떤 일들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나한텐 이 일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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