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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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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May 18.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탄

15.

수능 전 날은 무척 추웠다. 사람들은 이걸 보고 수험생들의 한이 서려서, 이맘때쯤 찾아오는 '수능 한파'가 찾아왔다고 호들갑들을 떨었고, 나는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거렸지.

시험을 칠 학교를 돌아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득 탄이 담배를 자주 피던 골목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탄이 그리워서라기보다는, 탄이 뱉는 담배연기가 그리워서 그랬다.

탄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여름보다도, 특히 겨울에. 그때 탄이 뿜어내는 담배연기는, 탄의 몸집보다도 크게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럼 탄의 실루엣이, 연기에 가려서 흐릿하게 보였고, 연기가 완전히 걷히고 나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는 탄의 모습이 참 듬직했다.

골목에 다다랐을 땐, 마침 연기가 자욱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연기가 걷힐 때까지 실눈을 뜨고, 한 곳을 응시했다. 연기가 하늘 위로 바스러지고, 날 먼저 알아봤던 건, 탄 쪽이었다.

  -어? 뭐야.

  -형!

분명 탄이었다.

  -오랜만이다?

하지만 내가 알던 탄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여러 이유로 그랬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탄의 짙은 머리카락과 눈썹이 보이질 않았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기보다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신생아처럼,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가 몰라볼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온종일 지치지도 않고, 운동장에서 슛을 쏠 수 있을 듯했던, 탄의 팔과 다리가, 과학실에 있는 뼈 모형 위에 싸구려 인조가죽을 덧대어 놓은 것처럼,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볼품없이 흔들렸다.

  -잘 지냈냐?

  -어… 잘 지냈지.

  -잘 지냈어 형?

  -뭐, 그럭저럭?

탄이 씩 웃으며 담배를 한 대 더 꺼냈다. 하지만 이번엔, 형이 부리려는 마술에 도무지 속아줄 수가 없었다.

형이 꺼낸 담배를 내리쳤다. 담배가 바닥에 힘없이 뒹굴었다.

  -그럭저럭?

  -야아… 아파.

탄을 골목 벽으로 세게 밀쳤다.

  -화라도 내.

  -너, 수능 전 날에 이렇게 힘 다 빼면, 내일 수능 조진다.

  -씨발, 빨리 화라도 내라고.

형을 때렸다. 차마 세게 때리진 못했다. 세게 때리면, 정말로 형이 망가져버릴까 봐, 그러진 못했다. 도통 분이 풀리지 않아서, 형이 기대고 있던, 벽을 마구 내리쳤다. 꿈쩍도 하지 않던 형이, 그제서야 화를 내며, 내 손을 붙잡았다.

  -야, 너 미쳤냐?

맞은 사람은 형이었고, 때린 사람은 나였다. 그런데 울고 있는 사람도 나였고,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 역시도 나였다. 탄이 울고 있는 날 불쌍하게 바라봤다.

지금 누굴 불쌍하게 바라보는 거야, 형. 지금 불쌍한 사람이 대체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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