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정아
24.
위에 나열한 일들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데,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나는 이 시간을 대부분 자는데 사용했다. 마음 같아선, 자는 데에만 쓰고 싶었지만, 유철이가 온종일 나를 불러댔던 탓에 그럴 순 없었다. 방학이 절반쯤 지났을 시점에, 유철이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대뜸 섭섭함을 토로했다.
-시간 좀 내 봐, 얼굴 까먹겠어. 방학 하고 한 번도 못 봤잖아.
-바빠서 못 나가. 시간 나면, 연락 바로 할게.
-뭐가 그렇게 바쁜데.
-요리도 도와줘야 하고, 일도 도와줘야 돼.
-요리는 엄마가 하고, 일은 아빠가 하는데, 너가 왜 바빠.
-아, 새끼야. 바쁘다고, 시간 되면 나간다니까? 왜 이렇게 보채.
-이번 주말에 나와라.
-시간 보고.
-너 계속 이러면, 친구들 다 떨어져 나가. 너 걱정돼서 그래.
'쓰다'라는 동사는, 돈이나 마음, 시간같이 유한한 명사 뒤에 붙기 마련이다. 그렇다는걸, 처음 알아차린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를 쓸 때가 아닌,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유철이와 나누었던 짤막한 대화가 끝나고 나서, 문득 엄마가 나로부터 도망친 이유는, 엄마가 나에게 쓸 수 있는 마음과 시간을 다 써버려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유철이에게 쓸 수 있는 마음을 다 썼기 때문에, 그 해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그 아이로부터 도망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