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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un 02.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정아

26.

정아에게 밥을 사주고 난 이후로, 정아는 나에게 더 많은 것들을 주려고 했다. 원래는 한 개씩 주던 딸기 사탕에, 젤리까지 덤으로 얹어준다거나, 내가 하굣길에 물었던 질문에 대한, 자세한 답변이라며 종종 저녁에 걸려오는 전화가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정아에게 건네는 마음의 양이 1이라면, 정아가 나에게 건네는 마음의 양은, 2에서 3으로, 3에서 5로 늘어갔다. 학교에선, 우리가 이미 사귀는 사이인 줄 아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정아의 친구들이 특히 더 유난이었다.

  -야! 너 정아랑 언제 사귈 거야!

  -정아한테 한 번 물어봐.

정아의 친구들이 나에게 성화를 부릴 때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답변을 정아에게 미루었다.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몰랐기에 답변을 유보한 것뿐었는데, 내가 이런 대답을 할 때면, 정아의 친구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돌아갔다.

  -나한테 물어보라고 했다며.

하굣길에, 정아와 좋아하는 꽃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뜬금없는 타이밍에, 정아가 주제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어? 어떤 꽃 좋아하는지?

당황했던 나는, 원래 이야기를 하고 있던 주제로 돌아오려 애썼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언제 사귈 건지.

  -아… 갑자기…?

정아가, 내 앞으로 와서 부드럽게 한 바퀴 빙그르 돌아, 날 마주 보며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애들이 물어봤어?

  -물어봤지.

정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대답도 했어?

  -응, 대답도 했지.

  -뭐라고 했는데?

정아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쫙 펴서 내 앞으로 보여주었다.

  -5개월?

정아가 고개를 저었다.

  -5일?

정아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접어가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오… 사… 삼…

정아의 의도를 이해했던 건, 정아의 손가락이 세 개쯤 접혀있을 때였다. 처음으로, 어쩌면 정아가 평균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거 다 세면, 우리 사귀는 거야?

내 말을 들은 정아가, 세던 숫자를 멈추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뭐, 귀신 봤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협박하는 거 같잖아.

  -그럼 언제라고 했는데?

정아가 돌아서서, 다시 앞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조만간.

  -우리 조만간 사겨?

  -음…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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