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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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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un 13.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정아

33.

거짓말을 하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정아가 묻는 질문에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하야, 너네 어머님은, 어떤 꽃 좋아하셔?

엄마의 얼굴도 가물가물했던 당시의 내가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알 리가 없었다.

  -음··· 우리 엄마 장미 좋아하는 거 같던데, 잘 모르겠네. 아마 장미 좋아할걸?

  -아 진짜?

  -응, 근데 왜?

  -우리 집, 꽃 집 하잖아. 꽃 좋아하시면, 몇 송이 드리려고. 이번에 화분 되게 예쁜 거 들어왔거든.

  -아, 아니야. 우리 집 맞벌이라, 꽃 관리할 사람이 없어.

  -에이, 받으시면 엄청 좋아하실걸? 내가 드렸다고 말하지 말고, 너가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샀다고 말씀드려.

얘기를 한 다음 날, 정아는 빨간 장미가 심어져 있는 화분을 내 손에 들려주었다. 화분과 꽃은 할매에게 주었다. 할매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라며, 할매가 아끼던 담금주를 내 손에 들려주었다. 보통 꽃을 받고서, 담금주를 돌려보낼까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정아야, 이거.

  -이게 뭐야?

  -담금주. 엄마가 화분이랑 꽃 너무 감사하다고, 꼭 같이 말씀 좀 전달해 달래.

  -내가 드렸다고, 말씀드렸어?

  -응응.

  -왜 그랬어!

정아가 내심 만족하는 듯, 웃으며 폭 안겼다.

  -마음에 드신대?

  -응, 완전 마음에 드신대. 엄청 좋아하시더라.

  -다행이다. 마음에 안 드실까 봐, 걱정했는데.

  -무슨 그런 걱정을 해.

내가 느꼈던 감정은 온통 걱정뿐이었다.

만약 정아가, 나의 엄마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때도,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선물을 준 사람이, 사실은 엄마가 아니라, 우리 할매였고, 그랬기 때문에, 선물로 꽃만큼이나, 예쁘고 낭만적 것을 돌려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래도 정아는 나를 좋아할까?

만약, 나도 정아랑 비슷한 곳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러니까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자랐다면, 엄마가 내 곁에 있었더라면,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결핍이 없었더라면, 이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같은 크기로 나 역시도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문득 정아와 내가 서 있는 곳이 같아질 순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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