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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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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Sep 19.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98.

해답을 찾아왔는데, 질문이 사라져 있었다.

인생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인생은 대부분 질문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나에게 그건 자로 잰 듯 의심할 부분이 없는 참인 명제였다.

근데 이번엔 아니었다. 답은 구했지만, 질문이 사라져있었다. 그럼 난 뭘 한 거지. 뭘 위해서 한 거지. 아 맞아, 그건 탄 때문이었지. 그럼 탄은 어디 갔지? 탄은 사라졌지.

그럼 난 뭘 한 거지. 뭘 위해서 한 거지. 아 맞아, 그건 탄 때문이었는데.

질문이 존재하지 않는 해답은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탄은 놓친 풍선처럼 날아가 버렸고, 나는 그런 탄을 어린아이처럼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맘 때 즈음엔 탄이 꿈에 많이 나왔다. 어떤 날에 탄은 날 저주했고, 그런 이유로 난 밤을 자주 새웠다. 며칠 밤을 새면 어딘가 멍한 기분이 든다. 그런 날 잠에 들면, 어김없이 탄이 나온다.

탄은, 내가 자신을 죽였다고. 본인이 이렇게까지 망가지기 전에 잡아 줬어야 했다고. 그걸 못할 거였으면, 자기 아버지라도 내가 잡아 넣었어야 했다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표정으로 날 저주했다.

내가 살아선 안 되는 사람처럼.

나는 울고 싶은 표정으로 형의 말을 듣다가, 그 말이 끝날 때 즈음이 되면, 나는 같은 말을 하지.

형 말이 전부 맞아. 형은 틀린 말 안 하니까. 그랬어야 했는데. 내가 형한테 기댔던 것처럼, 나도 형이 그럴 수 있게 했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한 거 아니까, 그런 무서운 표정은 짓지 말자. 오랜만에 보잖아 우리. 많이 보고 싶었던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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