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하연
103. (나와 하연 / 끝)
예전에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어떤 영화를 잠깐 본 적이 있다. 영화 분위기로 봤을 때 홍콩 영화였던 거 같은데, 스쳐 지나가듯 봤던 탓에 정확한 기억은 없다. 비가 오고 있었고, 남자 주인공은 반팔을 입고 운동장에 있었다. 조금 추워 보였다. 어쩌면 추워보이기보단 쓸쓸해 보였다.
그 남자는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만 년이라니 터무니도 없지. 무엇이든 만 년이라면, 형체도 없이 사라질 거야. 파인애플 통조림이던, 사람이던, 사랑이던.
그러니까, 하연아. 네가 준 편지는 말도 안 된다는 얘기야.
설령 사랑의 유통기한이 만 년씩이나 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만 년이라는 시간은 흘러서 이미 형체도 없을 우리 앞에 도달할 거니까.
행복하렴. 그나마 만 년 비슷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 사람을 못 찾았다고 하더라도, 오롯이 너 혼자서라도, 안온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렴.
너는 얼음같이 차가운 사람이 아니니까.
녹지 않는 것들은, 만년설 만년 꽁꽁 언 빙하 우리 집 냉동실. 에이, 다시 생각해도 냉동실은 억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