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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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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Oct 18.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순애

116.

기차나 버스를 탈 때면, 창가 쪽 자리를 선호하는 편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기차가 터널에 들어갈 때면, 우두커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피사체가 보인다.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지만, 결국 마주치고야 말테고.

그때부턴, 나를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한다. 내 눈, 눈 옆에 있는 점, 코와 입술.

점만한 생각이 물방울처럼 툭하고 떨어진다. 파동처럼 잔잔히 퍼진다.

사실 썩 나쁘지 않은 현재 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이 그렇게 불안하고 공허한지, 마음이 편치 않은지.

하연이를 그렇게 보냈으면 안 됐나, 정아한테 조금 더 솔직했어야 했나, 닫힌 탄네 집 문 초인종을 부서져라 눌러댔어야 했나. 난 왜 모든 걸 망치는지, 왜 다 망가져버리는지. 왜 나만 엉망진창인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면, 건너편에 앉아있는 저 여자도 사실은 엉망진창이지만, 의연한 척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럼 나도 괜찮다고 볼 수 있는 건가.

이야기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아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독서클럽에 더욱 집착을 할 수밖에 없었다누구에게도 물어본 적 없었던 내 삶을, 다른 사람의 삶인 양 나의 삶에 대한 질문들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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