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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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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Oct 26.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순애

120.

그 사람과 나는 근처에 있던 카페로 향하였고, 카페에 들어가기 전에는 담배를 한 대 피웠으며, 카페에 들어와서는 몸에 제일 해로워 보이는 음료를 골랐다.

음료를 받아 자리에 앉았을 때, 그 사람은 한숨을 깊게 한 번 들이마시고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이야기들을 엄청난 얘기인 양 쉼 없이 내뱉기 시작했다.

당시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들과,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또 하고 있는지, 누구에게로부터 어떻게 버림받았는지 같이. 가끔씩 그 사람이 훌쩍거릴 때면, 나는 휴지를 건네며, 안타까운 표정도 이래저래 지었다. 호응을 원하는 듯한 말을 할 때면, 뭐 나도 그냥 그랬지.

  -힘드셨겠네요.

점점 이야기를 듣는 게 벅찰 때쯤, 그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맞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모르는 아줌마가 아니라, 내 엄마였지.

  -저기요.

그 사람이 당황한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계란말이 잘 만들어요?

  -김치찜은요?

  -그치 난 알 방법이 없지. 먹어본 적이 없으니까.

  -미안해, 앞으론 많이 해줄게.

  -이젠 필요 없어요. 나는 이제 타코야끼만 먹어도 행복하거든.

  -아니 나는···

  -그러니까 왜 책임은 안 지고, 알아서 잘 크고 나니까 이제 와서 꿀만 빨려고 하냔 말이야.

여자가 컵을 어루만졌다. 이미 다 차갑게 식어버렸을 커피였는데, 손난로를 만지듯 이래저래 쓰다듬었다.

  -당신 나 알아? 모르잖아. 나도 이젠 당신 같은 사람 몰라.

  -더 할 말 없으시죠? 먼저 가 볼게요. 아, 쓰레기는 좀 버려주세요.

그 여자가 쓰레기를 모아서,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유리창을 통해 본 그 여자의 어깨가, 쓰레기통 앞에서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어딘가 죽은 듯 그 사람을 바라봤고, 그 여자가 밖으로 나오려고 하길래, 나는 발걸음을 급하게 옮겨야 했다. 뒤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되니.

엄만지 악만지 얼만큼 날 그리워했는지, 보고 싶어 했는지. 그랬다면 왜 진작에 날 찾아오지 않았는지. 내가 얼마나 당신을 필요로 했는지, 덕분에 내가 무슨 결핍을 겪었는지. 이런 것들을 모두 당신에게 설명해 내고 이해받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 귀찮게 하지 말고, 좀 꺼져. 이젠 당신보다, 차라리 옆집 아줌마랑 더 친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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