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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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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Nov 09.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순애

126.

그 사람을 다시 만났던 건, 자주 가던 술집 앞 흡연구역에서였다.

제대로 본 적 없던 얼굴이었지만, 고민 할 거없이 그건 순애가 맞았다. 그냥 그랬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저기 혹시 라이터 있으신가요?

순애가 날 쳐다봤다.

  -아뇨, 없는데요.

  -전 있는데, 빌려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아, 네.

망했네.

  -혹시 담배 있으세요?

어?

  -네, 있어요.

  -한 대만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네.

담배를 입에 문 여자가 라이터 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묘한 향이 날 덮쳤다. 뭐랄까, 진득한 피웅덩이 위에 할매가 쓰던 분가루를 잔뜩 뿌린 향이 났다. 정의하기 힘든 불길한 향이 그녀 주위를 감싸고돌았다. 담배에 불이 붙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본 적 있죠.

  -네, 있죠.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저번에 모자 쓰고 오셔서.

  -그랬었나.

  -순애님 맞죠?

  -동제님 맞죠?

이게 내가 순애를 제대로 마주 봤던 일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지, 술을 자주 마시러 다니는지, 아니면 술집에서 일을 하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학생인지. 무엇 하나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지만, 풍기는 향과 정말 잘 어울리는 외모를 가졌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이 사람과는 엮여도, 단단히 엮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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