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순애
135.
-한 번은 사랑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 본 일이 있어요. 잘 안 하는 생각인데, 갑자기 떠오르더라구요.
언제였더라. 응 맞아 그랬지. 우리 할매가 아팠을 때 병실에서. 그날은 유독 할매랑 tv를 오래 본 날이었고, 동물농장에선 아픈 몸으로 새끼를 지키는 고양이가 나왔었지. 나는 왜 그때 사랑에 대한 생각을 했었더라. 새끼 고양이가 부러웠어서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 있었던 할매가 든든해서였었나. 혹시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랑이 될까.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보게 된다면, 놀라서 도망가진 않을까. 그러고 나서는 하연이를 만났지. 되게 좋아했었는데. 왜 헤어졌더라. 여력이 안 돼서? 사랑씩이나 되는 거에, 여력이 없을 수 있나.
-언제 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할매가 아팠었거든요. 그때 병간호 할 때요.
-할머님을 많이 사랑하나 보네.
-그쵸. 근데, 그때는 할매 때문에는 아니었는데, 뭐 얘기해드려요?
-응.
-할매가 동물영상을 되게 좋아했어서 그날도 동물영상을 보는데, 아픈 어미 고양이가 새끼고양이를 보살피는 내용이 나오더라구요. 어,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거든요. 엄마가 바람 펴서요. 그래서 문득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고양이가 부러워서 그랬었나. 하여튼 그런 생각이 든 거죠.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
-그래서 했어?
-음, 비슷한 건 했죠.
-왜 헤어졌어?
-여력이 안 돼서 그랬나. 좀 핑계 같나요.
-글쎄 잘 모르겠네.
침묵이 흘렀고, 그제서야 화장실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잠깐 가까이 와볼래.
-네?
-가까이 와보라고.
순애가 의자를 끌어 거리를 좁혔다.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췄다.
-왜요?
-불쌍해서.
부정당하는 느낌. 내가 겪은 모든 게 불쌍하다는 한 마디로. 너무 쉽게 부정당하는 느낌.
-당신은 안 불쌍해?
-나도 불쌍하지. 근데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고.
-안아줄까.
-그럴래?
-응.
-왜?
-불쌍해서
-그래
-뭐가 그래야.
-그냥 그렇다고.
-근데 방금 한 얘기는 아까 비밀 얘기 할 때 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뭐, 그렇게 특별한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