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순애
144.
그 여자는 종종 아무런 기약 없이 어디론가 훌쩍 떠날 때가 있었다.
훌쩍이라고 해봤자, 정말 어디론가 멀리 떠났는지, 아니면 우리 집으로부터 멀리 떠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루 이틀 밤이 되어도 순애가 집에 찾아오지 않을 떄면, 그저 어디론가 멀리 출장을 가지 않았을까, 지레짐작을 하곤 했다.
순애의 출장은 몇 일이 걸릴 때도 있었고, 몇 주가 걸릴 때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순애가 이민을 가지 않았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이번 출장은 숫자를 세다가 포기할 정도로 꽤나 긴 출장이었다. 경찰에 실종신고라도 해야 싶었을 때에, 순애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찾아왔다.
-번호 안 바꼈네, 잘 있었어?
순애가 헤실거리며 들어왔다.
-어, 오랜만이네요. 저야 뭐, 언제나 잘 있었죠.
-비밀번호는 두 달에 한 번씩은 바꿔 줘야 돼. 밥은 먹었어?
-아뇨, 아직요.
-먹고싶은 거 있어? 시켜먹자. 맛있는 거 사줄게.
-됐어요, 먹고싶은 거 먹어요.
-뭐야, 반응이 왜 그래? 삐졌어?
-뭐가요.
-에이, 왜 그래~ 내가 미안해. 맛있는 거 사줄게.
-그렇게 얄팍한 거에 내가 넘어갈 줄 알아요?
순애가 내 팔을 쿡쿡 찔렀다.
-미안하다니까~ 일이 바빴어.
-어? 웃었다.
-제가 언제요.
-방금 조금 웃었는데?
-잘못 봤겠죠.
-나는 잘못 안 해. 그러니까 잘못 볼 일도 없어.
- ···
-그래, 이번 건 내가 조금 나빴지. 인정해. 그러니까, 먹고싶은 거 골라봐. 술도 조금 마실까? 나 요즘에 진짜 힘들었단 말이야.
-여기 못 왔던 게 제일 힘들었다고 말하세요.
-여기··· 뭐라고 했었지?
-자, 따라하세요. 여기 못 왔던 게,
-여기 못 왔던 게,
-제일 힘들었어.
-제일 힘들었나?
-안 해.
-장난이지 장난, 여기 못 왔던 게 제일 힘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