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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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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an 19. 2024

순애(殉愛/純愛)

나와 순애

147.

우린 낮보단 밤에, 밤보단 어스름한 새벽에 통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이따금씩은 욕심이 났다.

순애와 나의 사이에 놓여있는 것이 차가운 술병이 아니라 따뜻한 커피잔이라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 함께 녹아있다면.

  -내일은 뭐해요?

  -일하지.

  -주말에도 바쁘시네요.

  -왜?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눈치 빠른 순애는 분명 내가 한 말의 저의를 알고 있다. 그러니까, 순애는 에둘러 의사표현을 한 것이다.

마음씨 착한 순애.

다음 날에도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일어났을 땐, 늘 그렇듯 식은 커피 한 잔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차게 식은 커피, 깔끔하게 되어 있는 설거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집,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나. 테이블 밑에 떨어져 있는 어제 먹은 차가운 팝콘.

집 안으로 해가 들어왔다. 나는 집에 햇빛이 드는 게 싫었다. 햇빛이 드는 곳 끝에는 메모장 위에 적은 편지 한 통이 있었다. 편지에서 순애가 뿌리는 향수 향이 났다. “이따가 보자”

그 날 밤에 순애는 우리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넌 지금 자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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