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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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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an 24. 2024

순애(殉愛/純愛)

나와 순애

149.

내 삶에 있어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일들은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 여자아이에게 이토록 목을 매는지. 그건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아무런 계기가 없었으니까. 우린 그저 한 독서클럽에서 만났고, 단지 내 또래로 보였던 그 여자에게 눈길이 갔었을 뿐이었고, 우연찮게 술집에서 만났을 뿐이었는데. 가슴 절절한 사연이나, 운명 같은 건 전혀 없는 만남이었는데, 왜 나는 이 여자가 내 운명이었으면 하는지.

나를 가장 미치게 만들었던 건, 순애가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다는 점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만난 사람들은 어딘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그런 결핍을 메꾸려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고 나선 애써 우리 집에 왔다. 사람의 온기란 그런 결핍마저도 잠시나마 채워줄 정도로 대단한 것이니까.

순애는 그 지점이 달랐다. 분명 어떤 구석에선가 결핍이 있었던 순애는 내 몸이 아닌 품을 원했어야 했었다. 근데 그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원했어야 했었다. 근데 그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원했던 건 순애의 몸이 아닌 품이었는데.

그럼 순애의 결핍은 대체 누가 채우고 있는 걸까. 나머지 절반의 하루를 볼 수 없는 내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아, 너는 지금 노래 전주를 듣고 있는 걸 수도 있겠구나. 그럼 너랑 나 사이에선 어떤 내용이 쓰여질 일은 없겠구나. 아, 이제 알겠네. 알겠다. 근데 알고있지만, 알고있어도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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