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탄
4. (나와 탄 / 탄생)
두 번째 부류는, 무감각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참 '풍선'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게 처음 날아왔던 풍선은, 고등학교 1학년 장례식장에서였다.
처음 겪어본 장례식장은 뭐랄까, 참 기묘한 공간이었다.
검은 양복들을 입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있는 게, 꼭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에 꼬여 있는 개미들처럼 보이길래 조금 징그럽단 생각을 했다.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려 애썼다. 돈을 받은 사람들은 모자란 술과 음식을 내왔고, 돈을 낸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웃다가 이따금씩 울었다.
장례식장에서의 내 역할은, 조문객들의 신발을 정리하는 역할이었다. 아까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던 나는 장례식장을 슬그머니 빠져나와 흡연장으로 향했다. 물론 담배를 태우러 간 것은 아니었다. 나에겐 그럴 만한 용기도 없었거니와, 당시엔 제 돈을 주고 스스로 건강을 망치는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저 남들이 뱉는 담배 연기나 몇 모금 마셔볼 심산이었던 나는 멍하니 흡연장에 서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희한한 담배 냄새가 훅 하고 코를 찔렀다.
그곳에는 그런 독한 담배를 태워서는 안 될 것 같은 남자애 한 명이 멍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내 나이 또래로 보였던 그 아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그런 피부에서도, 돋보일 정도로 짙은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운동을 무척 잘할 것 같은 첫인상이었다.
그냥 내 느낌이, 이 사람과는 엮여도 아주 단단히 엮일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5.
한참 뒤에서야 알았지만, 탄은 내가 다니던 옆 학교의 전교 회장이었다. 후보가 다섯 명이나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전교 회장이 됐다나.
탄은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훤칠하고, 공부도 상당히 잘했던 데다가, 운동까지 잘했다. 탄은 누군가에겐 선망의 대상이었고, 누군가에겐 짙은 탄의 눈썹만큼이나, 깊은 질투의 대상이었다.
나와 탄은, 언제나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치곤 했다. 이를테면 상가에 있는 공용 화장실이라던가, 늦은 밤 공원을 걸을 때. 그 역시도 공원에서 항상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엉뚱한 행동을 하며, 그냥 그렇게 있었다. 물론 당시엔 서로를 크게 의식하진 않았다. 그와 나는 확실히 다른 세계를 살아가던 남이었으니까.
탄과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던 건, 동네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골목에서였다. 뿌연 담배 연기 때문에 나는 그게 탄인지 모르고 재빠르게 그 골목을 벗어나려 발길을 재촉하려던 참이었지만,
- 저기.
- 저 본 적 있죠.
- 네?
- 저번에 장례식장에서.
탄이 흥미로운 장난감이라도 본 양,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나는 이때 탄이 내 돈이라도 빼앗으려는 줄 알았는데.
- 장례식장이요?
- 4월에 장례식장 간 적 없어요?
- 아… 네, 있긴 한데요.
- 흡연장 왔었죠.
- 아… 네, 그것도 맞긴 한데요…
탄의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 아, 뭐야! 그럼 맞네! 우리 저번에 거기서 만났었어요! 담배 안 피우고 그냥 들어갔었죠?
- 저 담배 안 피워요.
- 아, 진짜요? 없는 줄 알고, 한 개비 줄까하고 엄청 고민했었는데.
- 아…
탄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내뱉던 담배 연기를 내 반대쪽으로 뱉기 시작했다.
-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17살이요
- 아, 저는 18살인데. 제가 형이네요.
- 아…네…
- 이쪽 위에 학원 다니세요?
- 네.
- 잘 됐다. 저도 거기 다녀요. 저 딱 한 대만 더 피고 올라갈 건데, 같이 올라가실래요?
- 아… 뭐, 네.
6.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갈 때, 나는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성장해야만 했다.
성장의 첫 번째는, 타인에게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것을 바탕으로 한 우울함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감정은 전염되기 마련이다. 우울함은 감정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이 꺼려 하는 감정이기에, 나는 이것을 철저히 감춰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쓰레기를 없애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각이다.
하지만 내 우울과 결핍의 근원은 젖은 장작같이 축축해서 여간 태워 없애버리기 힘들었기에, 다른 방법을 떠올려야만 했다. 그다음으로 떠오른 방법은, 매립이었다. 쓰레기를 묻고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이 흔히들 좋아할 만한 감정들로 파헤친 구덩이를 메꿨지.
그다음은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쉬웠다. 내가 굳이 먼저 나서지 않아도,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주었으니까.
'좋아하는 마음'을 받는 사람의 파급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다.
작은 범주로는 점심시간에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면,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받을 수 있는 게 그랬고, 커다란 범주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남들이 좋아하게 할 수도, 싫어하는 사람을 남들 역시도 싫어하도록 할 수 있는 게 그랬다.
이건 일종의 법칙이었다. 나의 인간관계는, 철저히 이 법칙 안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탄은 조금 달랐다. 그는 그런 법칙에서 벗어난 예외의 사람이었으니까. 나와 탄은 내 예상보다도 더욱 금방 친해졌다.
7.
그런 이유로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가끔씩 남들이 듣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솔직했다.
- 너는 그때 누구 장례식장 온 거였냐.
- 우리 할매요.
- 아, 말 놓으라니까. 어색하게. 그냥 형이라고 불러.
- 딱히 괜찮은데… 형은 그때 누구 장례식장 온 거였어요?
탄이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 나는 우리 엄마.
내가 할 말을 잃자, 탄은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 괜찮아. 예전부터 준비했던 거라. 나 어렸을 때부터 많이 아프셨거든.
형의 말이 끝을 맺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고. 떠오르는 말들을 입안에서만 마구 굴리고 있던 찰나에, 나도 모르게 툭 하고 묻었던 감정이 튀어나왔다.
- 저는 엄청 어렸을 때 말고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바람 나서 집 나갔거든요.
탄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더니 늘 그렇듯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린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이나 그저 웃었다. 이게 이렇게 별일이 아니었나.
- 시험은 잘 봤냐?
- 망했죠. 학대당하는 기분이에요.
- '성'적학대네.
- 드립 친 거예요?
탄이 씩 웃었다.
- 혹시 미친놈이에요?
탄은 이렇게 별일인 일을, 별일이 아니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고민이 있어서 탄을 찾아가면, 그 사람은 풍선만큼 부풀어 오른 내 고민을, 손쉽게 길쭉한 꽃으로 만들거나, 강아지로 만들어 나에게 건넸다. 그럼 어느샌가 내 고민은, 그냥 꽃이나 강아지 같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탄은 무감각한 사람이었다. 태풍의 눈처럼, 커다란 해일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깊숙한 바다 속처럼. 탄과 함께 있으면, 그 안에 있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편했다.
8.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탄은 3학년이 되었고, 나는 2학년이 되었다. 나와 탄은, 전보다 더욱 자주 만났다. 자주 만나는 만큼, 나는 탄에 대한 것을, 탄은 나에 대한 것을 더욱 많이 알게 되었다.
- 형은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해?
- 어렸을 때부터, 맞아가면서 하면 이렇게 돼.
- 내가 형만큼 하려면, 형 맞은 거에, 두 배는 더 맞아야겠는데.
- 너가 지금 생각하는 거에, 두 배만큼은 더 맞았을걸.
형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사뭇 진지했다. 탄도 이를 의식했는지, 금방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능청을 떨었다.
- 이럴 때는 새까만 게 참 좋다니까. 멍들어도 딱히 티가 안 나거든.
- 누가 때렸는데?
- 아빠가. 너 우리 아빠 못 봤지. 우리 아빠 경찰이다? 강력계. 완전 멋지지.
-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런 얘기 안 하지?
탄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안 하지. 너니까 한 거지.
나니까? 탄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던 걸까. 나라서? 나에게 탄은 분명 그런 사람이 맞는데, 근데 탄은? 나는 탄한테 그런 사람이었던가? 그럼 나는 탄에게 뭘 해줬지?
- 형.
- 어?
- 형 대학 가면, 나랑 목욕탕 갈래?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 그래, 그러자.
한차례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을 먼저 깬 쪽은 탄이었다.
- 너 대학 갈 거지?
- 아무래도?
- 그럼 공부 열심히 해서, 나 간 데로 와. 그러면… 음, 그러면… 술 사줄게.
- 형이 어딜 갈 줄 알고. 갑자기 수능 망해서 저기 뭐 이상한 데로 가면 어떡해.
탄이 내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 그럴 일은 없고 임마. 어딜 가도 내가 간 데만 오면, 입시는 무조건 성공한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반박은 따로 하지 못했다.
- 맞는 말이긴 한데, 묘하게 열받네
그때부턴 죽어라 공부를 했다. 이건 할매를 위해서도 아니었고, 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랬다.
9.
늦게 시작한 공부는, 인간관계와는 다르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내가 살면서 처음 가져본 목표였으니까.
어려움이 있을 때면, 탄은 귀신같이 알고 날 찾아왔다. 찾아와선 문제를 해결해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런 탄을 내가 먼저 찾아갔던 건, 9월이 처음이었다. 그날은 모의고사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나는 탄을 만나러 학원을 들렀고, 탄은 학원 교실에 홀로 엎드려 있었다. 짓굳은 마음으로, 살금살금 탄을 향해 걸어가 등에 손을 올렸다.
탄이 이상했다. 몸을 마구 떨고 있었으니까. 손을 의식한 탄의 눈과 나의 눈이 맞닿았을 땐, 형의 눈에서는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뭐랄까 그때의 탄의 모습은 엽총에 맞은 호랑이 같아 보였다.
아.
형이 울었다. 쥐고 있던 풍선을 손에서 놓친 어린 애처럼, 삶을 오기로 살아 오던 사람처럼.
- 주ㄱ…ㅇㅣㄹ거야… 죽…ㅇㅡㄹㄱ거야.
탄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같은 말만 반복해댔다. 탄의 목젖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응어리져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듣기 힘들었다.
- 잠깐만.
형의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탄을 부축한 채, 밖으로 향했다. 탄의 몸에 손을 짚을 때마다, 이따금씩 탄은, 고통에 찬 신음을 나지막이 뱉었다. 밖에 나와서는 산책을 했다. 탄이 진정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날씨는 조금 쌀쌀했다. 가로수에 매달려있는 나뭇잎이 울긋불긋하길래, 혹시 탄의 몸도 저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 형.
- 어?
- 내가 죽여줄까.
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 누굴?
- 형네 아빠.
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담배를 물었다.
- 되게 일상적인 대화는 아닌 거 알지?
형은 곤란한 대화를 피하려 할 때마다 담배를 꺼내 무는 습관이 있다. 이를테면, 마술사가 비둘기를 모자에서 꺼내기 전에, 언제나 습관처럼 하는 손동작 같이. 형이 습관처럼 하는 행동을 하면, 나는 씩 웃고 못내 속아버리지.
- 응, 알지.
10.
- 형은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뭘로 태어날래.
- 다시 안 태어난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야?
- 아무래도, 그쪽이 좋긴 해 그치?
- …
- 형, 형!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침까지 흘릴 기세네.
- 나는 고양이.
- 형이 왜 고양이야.
- 중에서도, 길고양이.
- 아, 아직 그 생각 하고 있어?
- 음, 역시 길고양이가 좋겠어.
- 길고양이? 왜?
- 그냥,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고 내키는 대로 안길 수 있잖아. 안기면 사람들이 막 맛있는 거 사주고, 사진 찍어가고.
- 형은 굳이 안 안겨도, 안아주는 사람들 많잖아. 저번에 그 한 살 후…
- 우리 지성인들끼리 주먹은 쓰지 않는 쪽으로 할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이 때리면 그거 특수 폭행이다? 우와 주먹 봐. 그거 뼈 맞아?
- 음, 길고양이라… 너무 빡세지 않을까?
- 뭐, 어때.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담벼락도 와다닥 타고…
- 그러려나
- 너는 뭐로 태어나고 싶은데?
- 나는 그럼 형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로 태어날래. 길고양이면… 뭐, 약 맞아 죽을 일도 없겠네. 가만히 앉아서 형 피나 쪽쪽 빨아먹어야겠다.
- 재주는 내가 부리고, 피는 너가 빠는 거야?
- 그렇… 와 벌써 군침 도네.
- 들어가자ㅋㅋㅋ 춥다 추워.
- 왜 그쪽으로 가. 형 집 반대편이잖아.
- 학원 가야 돼, 아직 할 거 남았어.
- 그냥 오늘은 집에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 됐어, 먼저 들어가.
- 야.
- 고맙다.
- 뭘 먼저가, 같이 들어가자. 나도 조금있으면 수능 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