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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하연

by 평일

72.

순애 브런치.png

- 조금 있으면 또 더워지겠다. 벌써 5월이야

- 여름 안 좋아해?

- 응, 막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 녹아 없어질까 봐?

하연이 날 맹한 표정으로 쳐다보다, 조금 뒤에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는지 팔을 툭 하고 쳤다.

- 탈까 봐.

- 너도 타? 엄청 하얀데?

- 나 되게 잘 타. 선글라스 쓰면, 선글라스 자국대로 타.

- 오, 진짜?

- 무슨 생각해?

- 선글라스 자국대로 탄 너 얼굴 생각.

- 그런 생각하지 마.

- 방금 마스크 자국까지 늘었어. 너가 하지 말라니까 더 하게 되잖아.

- 그럼 많이 해.

- 그럴게.

- ···나도 한다?

- 내 생각해? 부끄럽다.

- 안 하고 있는데?

- 거짓말, 하고 있었으면서.

- 재수 없어.

- 고마워.

- 오, 방금 팔까지 탔어. 딱 반절만.


73.

- 형, 나는 되게 유약한 사람이다.

- 그런 말 과자 와그작거리면서 하기 있기?

탄이 과자를 집어서 공중으로 던졌다. 공중으로 던진 과자가 깔끔하게 입안으로 들어갔다.

- 그런 사람들 있잖아.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 ' 누가 본다고 그래. 그냥 버리지 뭐.’ 이런 생각하면서

- 근데 누가가 나였거든. 나는 다 보고 있었거든. 내가 보려고 봤던 건 아니다? 그냥 보여서 봤을 뿐이었던 거지.

- 하필 꼭 그렇게 더러운 것만 보이더라고.

- ···

- 쓰레기가 쓰레기통에 모이듯이.

- 그래서 봐도 못 본척했고, 봤어도 유쾌하고 여유로운 척을 했지. 난 그렇게 유쾌한 사람이 아닌 데다가, 사실 부릴 수 있는 여유는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인데.

- 근데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나는 이제 열여덟 밖에 안 됐잖아··· 잘못은 그런 짓을 한 사람 쪽에 있는 거지. 그걸 봤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잘못이, 내 것이 되는 건 아니잖아.

- 어, 나 그거 한 입도 못 먹었는데, 다 먹었네.

탄이 봉지 안에 남아있던 과자 가루를 입에 털어 넣고, 봉지를 말아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번엔 쓰레기통 안으로 봉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 내 말 듣고 있어?

- 응, 아주 새겨듣고 있지.

- 그거 새겨듣고 있는 사람이 보일만한 태도?

- 다른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 됐다는 거는, 이젠 충분히 괜찮다는 뜻이니까.

탄은 아주 어른이구나.

- 이젠 좀 여유롭니?

탄이 나에게 처음 던진 물음표였다.

- 응,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 더 하고 싶은 말은?

- 내 과자 내놔.

- 과자는 없어. 이제 더 하고 싶은 말은?

- 쓰레기 버려.

- 에이, 누가 본다고

- 이상한 사람


74.

- 너 손목 되게 예쁘다.

마침 하연의 손목에 감겨 있던 파란색 머리끈을 보고 했던 말이었다. 그때 정자에는 하연이랑 나밖에 없었는데, 그 아이는 자신에게 한 말인지 되묻는 양, 날 바라보며 자신에게 손가락을 가리켰다.

- 내 손목? 징그럽지 않아? 핏줄 다 보이는데.

- 핏줄까지는 본 적 없는데. 오, 너 핏줄이 되게 청록색이다.

하연이 손목을 감싸 쥐었다.

- 손목 예쁘다는 칭찬은 또 처음 들어보네.

- 아무래도 흔한 편이 아니긴 하지.

하연이 이래저래 자신의 손목을 뜯어보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봤는데, 꺼냈던 이야기는 손목 얘기가 아니었다. 달이 둥글다는 얘기였는지, 낮에는 무더운데 비해 저녁이 되면 추워서 고역이라고 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길래, 나도 그런 옛날이야기를 꺼냈지.

- 우리도 되게 신기해. 그때 나 아팠던 날 있잖아. 아, 맞아. 그날 너 생일이었지. 그때 너가 타코야끼 먹으러 그 가게 안 왔으면, 아직도 어색했을 텐데.

- 우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지.

- 그거 우연 아닌데.

- 어?

- 그거 우연 아니라고.

하연이 마지막 남은 타코야끼를 입에 넣었다.

- 그럼 뭐야?

- 집 가는 길에 너 있길래 들어간 거였어. 그 뒤로도 몇 번 더 그랬는데.

- 그 이후로도? 그럼 우리 만난 게, 우연히 만난 게 아니었어?

- 아니었지.

- 이건 좀 충격인데.

- 우연이 계속되면, 그게 우연이 맞는지 한 번 생각해 봤어야지.

- 우연이 아니면?


찾아온 정적을 깼던 건 내 쪽이었다.

- 우연이 아니었으면?

- 남은 거 먹고 얘기할까?

- 너가 먹은 게 마지막이었어.

- 뭐야, 이건 좀 부끄러운데.

- 좀 더 사 올까?

- 아니야, 됐어 배불러.

잠시 침묵이 흘렀다.

- 내가 배고프다. 좀 더 사 올게.

- 아니야. 잠시만 앉아 봐.

하연이 내 가디건을 잡았다. 이어서 무어라 말을 하려 하길래,

- 우연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 다행이다.

- 너랑 장난치는 것도 재밌어.

- 나도 그래

-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

- 나도

- 장난 없이도

- 응

- 만나자.

- 응, 그러자.

여러분의 삶에서도 뭔가 우연이 계속된다면, 그게 우연이 맞는지 한 번쯤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누군가의 처절한 노력일 수도, 철저히 계산된 의도일지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75.

- 애들한테는 비밀로 하는 게 좋겠지?

라고 말했을 땐, 나 실망했어요ㅜ 라는 표정과 함께

- 비밀로 하고 싶어?

라고 되묻길래-

- 아니다, 생각해 보니까 되게 불편하겠다. 그냥 말하는 게 낫겠어.

라고 말했을 땐 하연이가 곧바로 활짝! 웃었다.

- 얘기 들으면 엄청 충격받겠다. 애들은 아직도 우리 어색한 줄 알잖아.

- 그건 그렇겠다.

- 나는 너가 나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 왜?

- 무슨 말을 해도 너가 들은 척도 안 했으니까.

- 부끄러워서 그랬는데.

- 별 게 다 부끄럽네. 부끄러운 건, 내가 더 부끄러웠지. 친하지도 않은 사람한테, 안겨서 울기나하고.

- 우리 그때 안 친했어?

- 우리 친했어?

- 나는 그런 줄 알았는데.

- 하여튼 부끄러웠어. 너 교복에 눈물 자국 묻었을까 봐, 걱정도 됐었고.

- 귀엽다고 생각했었어.

- 다른 사람 앞에서 운 게 처음이었거든.

하연이가 싫어하는 벌레 소리가 들렸다.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면, 되려 다른 자잘한 소리들이 귀 속을 메운다.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라던가, 누군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소리라던가, 왜인지 매번 화가 나있는 고양이 소리같이.

하연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할수록, 벌레 소리가 더욱 들렸다. 공기가 선선해서 기분이 좋았다. 가디건을 입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리도 하나 쓸까?

- 뭐를?

- 정자에.

- 벌써 그렇게 부도덕해진 거야?

- 그렇지는 않고···

- 뭐라고 쓰게?

- 너랑 내 이름이랑, 24.

- 우리가 사귄다고 해서 뭔가 크게 바뀔 건 없지 않을까.

- 그렇지. 딱히 크게 바뀔 건 없을 거 같은데.

- 마찬가지로 너한테 장난칠 거야. 물론 벌레는 빼고.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 아, 그리고 나는 여보, 자기 같은 호칭 쓰는 거 싫어해. 결혼도 안 했는데, 여보니 자기니 하는 거 오글거려서 싫어.

- 맞아. 완전 오글거려. ‘야’만 아니면 다 좋아.

- 하던 것처럼 이름으로 부를래. 그게 담백하고 제일 좋은 거 같아.

- 맞아. 나도 그게 제일 좋아.

- 또 원하는 거 있어?

- 음, 무던하게 사귀는 거. 크게 싸우지 말고, 너무 깊게 좋아하지 말고. 조금 있으면 고3이니까. 물론 고3 끝나면 그래도 좋아. 기꺼이 허락해 줄게.

- 감동인데?

- 너는 원하는 거 있어?

- 나도 마찬가지야. 큰 탈 없이 잘 사귀는 거. 이러니까 무슨 계약하는 거 같네.

- 엄밀히 말하면 계약이지.

- 아, 그러면 방금 정자에 쓴 게, 계약서에 서명한 거야?

- 그렇지. 1년마다 계약 갱신이야. 도영씨랑 지원씨처럼.

- 그래, 그러자.

2018년 늦은 봄과 초여름 사이에서 우린 계약서를 쓰는 사이가 됐다. 철저한 파트너 사이를 지나쳐, 치즈 타코야끼를 나누어 먹는 사이를 넘어서.


76.

하연이와 나의 예상과 달리, 우리 둘이 사귀는 건, 꽤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나와 하연의 사이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커다란 반응이 터져 나왔던 건, 방송부 쪽에서였다. 크게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는데, ‘이럴 줄 알았다.’와 ‘너네가 어떻게 이래.’ 쪽이었다. 사실 ‘이럴 줄 알았다.’ 쪽은 준우밖에 없었다.

- 봐. 내가 전형적인 클리셰라고 했지? 빨리 돈 가져와.

다른 방송부 친구들이 준우의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준우에게 돈을 건넸다

- 야, 사귀는 건 우리 둘인데, 돈은 왜 얘한테 줘.

내 말을 들은 준우는, 나에게 만원을 건넸다.

- 그래그래, 수고했다. 고맙고 이걸로 하연이랑 맛있는 거 사 먹어라.

?

- 야, 줄 거면 2만 원은 줘.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하연이 말했다.

- 두 명에서 맛있는 거 사 먹으려면 2만 원은 있어야지.

너한테 이런 면도 있구나.

- 그래. 2만 원은 줘야지. 우리 타코야끼 먹어야 돼.

- 야 타코야끼 해봤자 얼마나 한다고.

- 32알 먹을 거야.

- 그래, 맞아. 심지어 치즈 타코야끼로 먹을 거라고.


77.

- 내가 대체 어떤 부분이 얼음 같다는 거야?

하연이는 얼음이라는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 전반적으로?

- 나는 그런 적 없는데.

- 너가 약간 차갑게 생겨서 더 그런가 보다.

- 나 차갑게 생겼어?

- 아무래도 좀 그렇지?

- 별로다.

- 왜, 나는 좋은데.

- 괜찮아?

- 응, 예뻐.

- 그럼 됐어.

- 덥다.

- 그렇네.

- 나랑 있으면 시원할 거야.

- 얼음 같으니까?

- 웩, 그렇게 들으니까 더 오글거려.

- 더울 때, 차가운 거 생각하면 좀 시원해지는 거 알아? 얼음 같은 거 있잖아. 눈이나.

- 너 경험이야,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거야?

- 몰라? 나는 시원해지던데?

- 한 번 해 보지 뭐.

- 무슨 생각해?

- 만년설.

- 그럼 난 꽁꽁 언 빙하.

- 우리 집 냉동실.

- 그게 뭐야ㅋㅋㅋㅋ 너무 억지 아니야?

- 당분간은 안 녹을걸?

- 부동항.

- 그건 평생 안 어는 거잖아.

- 근데 좀 시원한 이미지지 않아? 몰라 그냥 생각나서.

- 그럼 나는 부동액.

- 부동액 하니까 안티프리즈 생각난다.

- 백예린 노래?

- 검정치마 노래가 원곡이야.

- 그게 그렇게 진지하게 말할 일이야ㅋㅋㅋ?

- 그럼.

- 알아둘게

- 좋아해줘.

- 좋아도 해 줄게.

- 검정치마도 나도.

- 너는 이미 충분히 좋아하고 있어.

말을 마친 하연이 내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뺐고, 하연은 깜짝 놀라서 동그래진 눈으로 날 바라봤다.

- 아, 손에 땀이 많아서. 부끄러워.

- 너랑 손잡으려면 가을은 돼야겠네. 느긋하게 기다려 볼까.


78.

- 하연아, 나 할 말 있어.

-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진지하게 와.

- 음···

- 뭔데?

- 갑작스럽고, 진짜 이상하게 들릴 거 아는데···

- 그냥 얘기해.

- 나는 스킨십하는 게,

- 좀 그래.

- 갑자기? 아, 저번에 손잡은 거 때문에?

- 아니··· 뭐 딱히 콕 집어서 그거 때문은 아니긴 한데, 이제 사귀는 사이기도 하고··· 미리 말해 줘야 될 거 같아서.

- 왜 그런지 물어봐도 돼?

왜 그런지, 왜 그런지···왜 그렇다고 하는 게 좋을까.

- 아, 이거 진짜 부끄러운 건데. 말을 해도 되나.

- 괜찮으니까, 말해봐.

하연이 사뭇 진지하게 내 말을 듣고 있었다.

- 어렸을 때, 새벽에 잠이 안 오는 거야. 그래서 티비를 틀었지.

- 그때 공중파에만 머물러 있어야 됐는데··· 쓸데없는 호기심에, 채널을 위로 올려버린 거야. 평소에 집에서 15번 이상으로 채널을 못 올리게 했었거든.

- 도라에몽이 보고 싶었는데, 티비에서 나온 건 도라에몽 대신 공통점이라고는 홀딱 벗고 있는 사람들이 나왔다는 거 밖에는··· 아마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그때부터는 좀 다 역하더라고. 그냥

하연이 내 말을 듣고,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이없는 이유라며, 웃음을 대가로 적당히 어물쩡 넘어가 줬음 했다. 하지만 하연이는 이야기를 마치고, 내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고 있을 때도,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때가 몇 살이었는데?

- 그때? 글쎄 한 6살, 7살?

- 그럴만하네.

하연이 말을 마친 후에도, 무언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 있었는지, 생각을 멈추지 않는 듯 보였다.

- 저번에 내 손목 예쁘다고 했었지.

- 응, 그랬었지.

- 한 번 잡아 볼래?

하연이 소매를 걷어 손목을 내 앞에 내놓았다.

- 어?

-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 한 번 잡아봐.

얼떨결에 잡았던, 하연의 손목은 바라봤을 때보다도 훨씬 더 얇았다. 손목을 감았던 엄지가, 중지 끝마디를 거의 모두 덮을 정도로. 이렇게 얇은 손목으로, 이것저것 어려운 일들을 척척 해내는 하연이 대견했다.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하연의 맥박 소리였는지, 내 심장이 뛰는 소리였는지, 두 쪽 다였는지는 헷갈렸지만, 무척이나 그랬다.

- 이번엔 내가 잡아봐도 돼?

너가 하는 말에는, 역시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 어때? 지금 역해?

- 아니···

- 그치, 역하지 않지.

- 응.

- 내가 도와줄게.

- 응, 고마워.

어떤 걸 도와준다는 건지, 나는 대체 뭐가 고마웠던 건지. 할 수 있었던 말이 고맙다는 말뿐이었는지, 딱딱하게 얼어서 아무런 소리나 뱉어댔던 건지, 나는 지금부터가 혼란스러웠는데, 하연이는 이제야 찝찝한 구석이 없어진 듯 웃었다.

- 손.

- 응.


79.

- 형은 요즘 행복해?

- 그럭저럭.

- 되게 좋은 말이다.

- 그럭저럭이?

- 응. 그게 내 꿈이거든. 그럭저럭 행복한 거.

- 왜, 왕창 행복하지 않고.

- 그럼 오히려 불안해. 불행이랑 행복이 적당히 섞여서 일어나야, 뭔가 상쇄되는 기분이 들어.

- 행복 총량의 법칙 뭐 그런 거야?

- 그런 셈이지. 너무 행복하기만 하면, 나중에 어떤 크기의 불행을 받게 될지 무서워.

- 요즘엔 행복해?

- 응, 너무. 가끔은 내게 맞나 싶을 정도로.

- 왜 그렇게 행복한데?

- 형도 있고··· 하연이도 있고··· 형이랑 하는 이런 얘기도 재밌고, 하연이랑 치는 장난도 재밌고.

- "있다"라는 말 되게 좋지 않냐.

탄이 내 말을 듣고 대답을 내어주지 않다가, 한참 뒤에서야 허공을 보고 말했다.

- 어떤 점이?

- 그냥. 뭔가 많이 가진 거 같아서 든든하잖아.

- 질병이 있다는?

- 그런 거 말고···

- 빚이 있다는?

탄이 웃었다. 나도 옆에서 같이 킥킥댔다.

- 고3은 어때, 안 힘들어?

- 힘들지. 그래도 너랑 얘기하면 재밌어.

- 그럭저럭 행복할 만큼?

- 그치. 그럭저럭 행복할 만큼.

- 형은 그럭저럭 행복하지 말고, 왕창 행복해.

- 고3 끝나고 대학 가면, 그때. 그땐 왕창 행복만 해야지.


80.

- 사람의 몸에는 미세한 전류가 흐르고 있대. 스마트폰 터치가 가능한 이유도, 그래서 그런 거래.

신기하다, 신기하네.

- 신기하지.

- 응, 그렇네.

그럼 너랑 손을 잡고 있으면, 우린 감전된 상태인 건가. 이어져 있는 건가, 손바닥이랑 손가락으로 말고 전기로. 그렇다면 말이 된다. 뭐가 말이 되냐면, 네 생각이 많이 나는 게. 예를 들자면, 너는 참 손이 말랑말랑한 게 식빵 같네, 하얗네. 꼭 쥐고 있는 반대편 손은, 왠지 계란을 닮았네. 같은 생각들.

그런 생각들 사이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감전된 사람이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을지나, 내일은 어떤 걱정들로 날 고문해 볼까 같은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것처럼.

그땐 왠지 너랑 나는 같은 생각을 할 것 같다. 너도 지금 감전 상태라고 생각할 것 같단 말이지. 음··· 그렇단 말이지.

- 정말 신기하네.

- 그렇게 신기해?

- 응. 너도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 그렇지.

- 응응, 그렇지.

- 너도 지금 내 생각하고 있지.

- 응, 그것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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