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m
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살을 에듯 차가워지고 밤이 점점 낮을 야금야금 집어삼킵니다. 벌써 가을이 왔나 봐요.
가을이 왔다는 건 이번 한 해도 슬슬 끝나간다는 뜻이겠죠.
사실 저는 매년 이맘때쯤 한 해를 돌아봅니다.
너무 좋았던 한 해였기에 책을 읽다 좋은 구절을 마주쳤을 때 쉽사리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끝까지 붙잡고 있던 한 해도 아프고 지쳐 제발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한 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무 살이란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조만간 스물한 살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떨어져야 하는 지금의 제 기분은 재밌고 행복한 영화의 끝을 기다리는 초조한 기분도 삶에 쫓겨 허덕이는 모습도 아닙니다.
웃긴 얘기지만 만약 나의 스무 살이 사람이었다면 나는 먼저 엷은 미소를 띠고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나의 스무 살은 물론 분노도 절망도 가득했지만 수많은 크고 작은 성취와 나의 가능성으로 충만한 한 해였거든요.
내가 이뤄낸 성취와 가능성 모두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과 제 친구들 그리고 제 가족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아주 잘 알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만큼은 나의 스무 살에게 모든 걸 넘겨주고 싶습니다.
수고했다 충분히 잘했고 이십 대의 시작을 멋지게 열어줘서 고맙다.
덕분에 나의 스물한 살은 발걸음 가벼운 여행자처럼 신나게 이곳저곳을 마구 돌아다닐 거야.
난 이제 미련 없이 손을 놓고 스물한살로 떨어진다.
잘 있어 이따금씩 추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