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13

나와 순애

by 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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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성인이 되고선 '엄마'라는 개념이 나에겐 조금 알쏭달쏭했다.

예를 들면, 저저번 주 주말에 있었던 술자리.

- 여기는 계란말이가 참 맛있단 말이지.

- 계란말이 너무 비싸. 가성비가 안 좋달까.

- 신기하게, 우리 집 계란말이 맛이 난단 말이야. 우리 엄마가 계란말이 하나는 진짜 기가 막히게 하는데···

- 야, 너가 우리 엄마 김치찜을 안 먹어 봐서 그래.

라고 내 옆에 있던 친구가, 이야기를 자연스레 이어받았고, 내가 말할 차례가 다가왔을 때.

- 우리 엄마는 요리 잘 못해. 아, 근데 진짜 우리 집 앞에 있는 타코야끼가 엄청 맛있거든?

라고 의연히 대답을 했지만, 사실은 엄마가 하는 제육볶음은 어떤 맛이었을지, 계란말이는 어떤 맛이었는지 가물가물했다던가. 또 며칠 전에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열린 체육대회를 우연히 본 일.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엄마를 보고 반가워하는 아이의 표정을 봤을 때, 알 수 없었던 내 기분과, 마주칠 일 없던 그 엄마라는 존재를 15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 우리 집 앞에서 마주한 일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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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잘 만났던 건, 내 집 앞에서였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 사람이 서 있었다는걸, 편의점 어귀에 도착을 해서야 알아차렸고, 그 사람이 내 엄만지, 아니면 집 앞에 가끔 오시는 야쿠르트 아줌만지는 편의점 앞에서도 알기 힘들었다.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던 건, 그 사람이 나를 한참 동안이나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였고, 그게 내 엄마라는 건 그 사람이 나를 향해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올 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얼굴을 보고 안 게 아닌 예전에 좋아했던 엄마 냄새를 맡고.

그 사람은 내 앞에 멈춰 서서, 말없이 내 얼굴을 어루만졌고 나는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 사람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졌다.

- 오랜만이네···

- 올라가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힘들 거 같은데요.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싶었었는데

- ···집 말고 다른 데로 가요.


119.

그 사람과 나는 근처에 있던 카페로 향하였고,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태웠으며, 카페에 들어와서는 몸에 제일 해로워 보이는 음료를 골랐다.

음료를 받아 자리에 앉았을 때, 그 사람은 한숨을 깊게 한 번 들이마시고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이야기들을 엄청난 얘기인 양 쉼 없이 내뱉기 시작했다.

당시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들과,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또 하고 있는지, 누구에게로부터 어떻게 버림받았는지 같이. 가끔씩 그 사람이 훌쩍거릴 때면, 나는 휴지를 건네며, 안타까운 표정도 이래저래 지어보였다. 호응을 원하는 듯한 말을 할 때면, 뭐 나도 그냥 그랬지.

- 힘드셨겠네요.

점점 이야기를 듣는 게 벅찰 때쯤, 그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맞다, 이 사람 모르는 취객이 아니라, 내 엄마였지.

- 저기요.

그 사람이 당황한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 계란말이 잘 만들어요?

- 김치찜은요?

- 그치 알 방법이 없지. 난 먹어본 적이 없으니까.

- 미안해, 앞으론 많이 해줄게.

- 이젠 필요 없어요. 이제 나는 타코야끼만 먹어도 행복하거든.

- 아니 나는···

- 그러니까 왜 책임은 안 지고, 알아서 잘 크고 나니까 이제 와서 바짓가랑이 붙잡냐 이 말이야.

여자가 컵을 어루만졌다. 이미 다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였는데, 손난로를 만지듯 이래저래 쓰다듬었다.

- 당신 나 알아? 내가 뭐 좋아하고 뭐 싫어하는지는? 그건 알아?

- 모르잖아. 나도 이젠 당신 같은 사람 몰라.

- 더 할 말 없으시죠? 먼저 가 볼게요. 아, 쓰레기는 좀 버려주세요.

여자가 쓰레기를 모아서,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유리창을 통해 본 그 여자의 어깨가, 쓰레기통 앞에서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어딘가 죽은 듯 그 사람을 바라봤고, 그 여자가 밖으로 나오려고 하길래, 나는 발걸음을 급하게 옮겨야 했다. 뒤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저기···

-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되니.

엄만지 악만지 얼만큼 날 그리워했는지, 보고 싶어 했는지. 그랬다면 왜 진작에 날 찾아오지 않았는지. 내가 얼마나 당신을 필요로 했는지, 덕분에 내가 무슨 결핍을 겪었는지. 이런 것들을 모두 당신에게 설명해 내고 이해받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 귀찮게 하지 말고, 좀 꺼져. 이젠 당신보다, 차라리 옆집 아줌마랑 더 친하니까.


120.

예전에 가끔씩 이런 종류의 상상을 했던 적이 있다. 만약 엄마가 나를 다시 찾아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상처를 줘야 할까. 먼저 느긋하게 담배를 한 대 피울 것이다. 익숙한 양, 언제나 피우 듯 늘어지게. 그리고 카페로 가야지. 가서는 몸에 가장 안 좋아 보는 메뉴를 주문할 것이다. 설탕이 아주 많이 들어있는 음료라든가, 카페인이 고통스러울 만큼 들어있는 음료를 시켜야지. 둘 다라면 무척이나 좋겠다.

봐라, 당신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떠난 탓에, 나는 언제나 이렇게 안 좋은 걸 물고, 늘상 안 좋은 것만 입에 댄다. 그럼 속이 좀 후련하겠지. 그 이후엔? 울게 되려나, 아니면 욕을 하려나. 그러면 끝인가. 뭐가? 엄마와 나의 관계가? 아니면 내 결핍이라던가, 갈증 같은 것도?

그 뒤에는? 감동의 재회? 아버지에게 이 말을 전하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는 건가? 에이, 말도 안 되네.

그래, 말도 안 되네.


121.

다음 날은, 마침 세 번째 독서 클럽이 있는 날이었고, 궁금한 것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개인적인 질문들부터, 순애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 어? 동제님 일찍 오셨네요?

- 아,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 잘 지내셨어요?

- 네네, 잘 지냈죠. 잘 지내셨어요?

- 네, 저도 잘 지냈죠.

이어서, 저번에 봤던 중년 남성이 들어왔고, 다음으론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다들 알고 있던 얼굴들이었다. 오늘도 순애는 안 오는 건가 싶은 마음에, 의미 없이 책을 뒤적거리고 있던 차에, 활동실에 사람이 한 명 더 들어왔다.

- 어, 오랜만에 오셨네요.

여자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작았던 탓에,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을 땐,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사실 벙거지를 푹 눌러쓰고 있었던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입은 옷차림새가 꼭 그래 보였다.

- 자, 오늘은 순애님 오랜만에 오셨으니까, 순애님이 먼저 읽어볼까요?

고개를 끄덕일 때, 얼핏 보인 얼굴이, 순애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꽤나 진한 화장을 한 느낌이 들었다. 순애, 저 여자가 순애구나. 그녀가 글을 읽을 땐,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용을 헤아리려 순애의 목소리에 한참 집중하고 있을 때, 순애의 목소리가 툭 끊겼다.

- 다음은 동제씨 부탁드려요.

- 네···? 아, 혹시 죄송한데 지금 어디까지 읽으신 거죠?


122.

정작 물어봐야 했던 말들은 모두 다 덮어 두고서, 세 번째 독서 클럽에서 얻어 온 건, 테이블 위에 얹어 놓았던, 순애의 핸드폰 기종과, 어떤 브랜드의 핸드크림을 쓰는지 같은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이었다.

아, 또 순애의 목소리. 반대편에 앉아 있던 내가 듣기엔, 너무나 작은 울림이었지만, 전반적인 말의 분위기에서 조곤조곤하고, 어딘가 단단한 구석이 있다는 것.

쌍꺼풀은 있으려나. 없는 게 더 예쁠 거 같기도 한데. 하긴 뭐, 상관은 없겠지.

다음 번 활동 때는 순애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으면 했다. 인사를 주고받을 때, 순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했다. 옷에는 어떤 향이 베어 있을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그 음식을 먹을 땐 무슨 노래를 들으며 먹을지, 기쁜 일이 있다면 무슨 표정으로 웃음 지을지, 슬픈 일이 있다면, 어디에서 위로를 찾을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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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단어를 계속해서 읽으면 익숙했던 단어가 어딘가 이질적인 무언가처럼 느껴지곤 한다. 젓가락··· 젓가락··· ‘젓 가락’ 같기도, ‘젓가 락’ 같기도.

굳이 나누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젓 가락’ 쪽이 맞겠지. 젓가 락은 너무 욕같이 들리니까. 단어를 반복하고 나누어 보아도 어색할 때는 거꾸로도 읽어 본다. 락가젓. 왜 젓가락을 락가젓으로 읽으면 안 되는 거지. 아뇨, 아뇨. 그건 어쩔 수 없죠. 사회적 합의라는 게 있으니까요. 식당에서 락가젓 좀 주시겠어요? 하면 아마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다 날 밖으로 내쫓아 버리겠죠.

순애··· 순애··· 수운애 순애? 이상하다. 그렇다면 애순··· 애순··· 훨씬 더 촌스러워진 이름이네. 어디선가 애수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데, 어디였더라, 아 고등학교 국어 지문에서 봤었던가. 애수··· 순애··· 하얀 피부, 검은 머리칼에 작은 체구와 잘 어울렸던 벙거지 모자.

순애인지, 애수일지. 아니면 아예 다른 무언갈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처음 마주친 여자를 온종일 떠올렸다. 순애로도, 애수로도.


124.

순애를 처음 봤던 그날 이후로, 순애는 독서클럽에 나오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순애는 클럽에서 제외됐다. 그때부턴 영 독서클럽에 흥미가 가지 않았다.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였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란 사람은, 순애를 본 순간부터, 그 여자 한 명이었으니까. 떠올렸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한동안은 순애를 볼 수 없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의 일상은 별 소득이 없었던 것이었기에, 빠르게 순애를 만났을 때로 시점을 옮겨보려고 한다.


우리 집 근처에는 언제나 사람이 붐빈다.

회사와 술집에, 내가 다니는 대학교까지. 이런 곳에서 살면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는데 일에 찌든 사람부터, 술에 찌들어 있는 사람, 술에 취해 행행복복 해 보이는 사람, 나라 잃은 사람처럼 울어대는 사람같이, 그런 부류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근데 하필 내가 순애를 다시 만났던 날은, 되려 내가 그런 부류 속에 속해 있을 때였다.


125.

여러분은 운명을 믿는지. 나는 좀 애매했었는데.

그 날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자애의 생일파티가 있던 날이었다. 엮여 있는 사람이 많아서 빠질 수 없는 자리였던 탓에, 수시로 담배를 태우러 갔었고 이번 걸 다 피우면 적당히 자리를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창문 안으로 웃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꼭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에 꼬여있는 개미들처럼 보이길래 조금 징그럽단 생각을 했다. 익숙한 담배 냄새가 훅 하고 코를 찔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는데 기대했던 남자가 아니라, 찾고 있던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 저기 혹시 라이터 있으신가요?

여자가 날 사납게 쳐다봤다.

- 아뇨, 없는데요.

- 전 있는데, 빌려드릴까요.

- 아뇨, 괜찮아요.

- 아, 네.


- 혹시 담배 있으세요?

- 네.

- 한 대만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 그럼요.

여자가 한 발자국 다가섰다. 묘한 향이 덮쳐왔다. 뭐랄까, 진득한 피웅덩이 위에 할매가 쓰던 분가루를 잔뜩 뿌린 향이었는데.무슨 향이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불길한 향이 그녀 주위를 감싸고돌았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 우리 본 적 있죠.

- 네, 있죠.

-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저번에 모자 쓰고 오셔서.

- 그랬었나.

- 순애님 맞죠?

- 이름까지 기억하시네.

-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서요.

-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닉네임 말씀하시는 거예요?

- 네, 뭐.

- 동제요.

- 아.

- 독한 걸로 피우시네요.

- 오 이거 아는 사람 많이 없는데.

- 예전에 아는 사람이 피우던 거라서요.

이게 내가 순애를 제대로 마주 봤던 일이었다. 아니 사실 그 때 그 여자를 순애로 봤는지, 내가 알던 사람으로 겹쳐 봤는지 잘 모르겠다.

학생인지, 회사에서 일을 하는지, 술을 자주 마시러 다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술집에서 일을 하는지. 무엇 하나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지만, 풍기는 향과 정말 잘 어울리는 외모를 가졌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이 사람과는 엮여도, 단단히 엮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질문으로 돌아와 여러분은 운명을 믿는지. 나는 믿는 편인데.

아니 최근에 믿게 된 편인데


검은색 길고양이. 그중에서도 털에선 윤기가 눈에는 살기가 흐르는 대장 고양이. 맞아 탄이 되고 싶어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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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

- 갑자기요?

- 보통 다 이렇게 시작하는 거 아닌가요.

- 뭐가 시작됐는데요?

- 일단 뭐라도요.

- 그래서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

- 라면?

- 음악 듣는 건요? 그건 좋아하세요?

- 취조하시는 거예요?

- 한번 엮여 보려고 노력하는 중인데요.

- 그런 걸 누가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요

- 긴장해서 아무런 소리나 막 해보는 거죠 일단.

-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 맥박이라도 짚어보실래요?

- 담배 갚을게요.

- 에이 괜찮아요.

- 오늘은 제가 좀 바쁘고 다음에. 전화번호 주세요.

- 하긴 빌려간 건 갚긴 하셔야죠.

- 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그냥 순애라고 저장해 두세요.

- 그럼 저도 동제라고 저장하실 거예요?

- 그래야죠.

- 나쁘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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