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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3. 2024

"눈치 보매 살 필요 엄따. 금방 할매된다, 금방이라"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최서영)』

“사는 게 금방이라. 하고 싶은 거 다 하매 살아. 다 해야 돼.
눈치 보매 살 필요 엄따. 금방 할매된다. 금방이라.”


  작가의 아흔이 넘은 할머니 말씀을 읽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사는 게 금방이라니, 금방 할매가 된다니.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럴 것도 같다. 아줌마라는 말에 이제 겨우 익숙해졌는데. 아니지, 아직도 누군가가 '아줌마' 혹은 '어머니'라 부르는 호칭을 들으면 그제야 내가 아이 엄마라는 걸 새삼 깨닫고는 했는데. 이렇게 바쁜 듯 멍하게 살다 보면 금세 할머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어렸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시간에 끌려다니다 이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는 건 아닌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시간이 쏜살같다는 닳고 닳은 말. 그럼에도 이것만큼 시간의 빠름을 잘 드러내주는 말이 있을까. 13살 꼬맹이 때였을 때도 시간이 빨리 간다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고작 십 대 초반의 나이에도 그렇게 느꼈으니 마흔이 된 지금은 오죽할까. 휘릭 달력을 떼어내는 월말이 되면 아이들은 큰 도화지가 생겼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새로운 달을 맞이하는 설렘보다는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언젠가 모든 것은 지구의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커다란 우주 속의 자그마한 지구와 작디작은 지구 안에서의 내 무게를 떠올리면, 크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던 일도 우주의 시선으로는 사소한 먼지보다 작은 것일 테다. 그렇게 멀리서 들여다보면 나를 괴롭게 하던 고민거리들이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쪼글쪼글 작아져있다. 어차피 사라질 건데 지금 책을 읽고 어렵게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동시에, 모든 것이 사라질 테니 지금부터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문득 쓰고 싶은 욕심이 머리를 내밀면 글쓰기마저도 손이 가질 않는다. 지금 쓰는 글들도 먼지처럼 사소한 것일 테니 은근히 올라오는 욕심덩어리에게 잘 쓰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이며 마음을 꾹꾹 눌러본다.)



진짜 나를 알아가기로 작정한 다음부터 내 인생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좋아하는 시간과 장소와 사람, 하고 싶은 일, 취향, 기분이 좋아지는 작은 것들에 대해. 마흔이 되도록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이 어렵다. 책에 적힌 대로 하나씩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다 보면 나에 대해 알게 될까. 열심히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는 공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고 싶은 것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해야 하는 것들로 가득한 하루에 이제부터라도 좋아하는 것들을 끼워 넣어 보려고 한다. 하나씩 채우다 보면 좋아하는 것이 가득한 하루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작가는 '진짜 나'를 알려고 한 후부터 자기의 삶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정한 목적지로 운전하는 것 같은.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살다 보니 내 삶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저 눈앞에 쌓인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나'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너무 늦지 않은 것 같아 반갑다. 사춘기가 훌쩍 지나 갱년기를 앞둔 나이에 자아 찾기를 시작한다니 어리둥절하고 겸연쩍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다보면 진짜 내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생의 초콜릿을 어떤 태도로 맛볼 것인지 정해야 한다.


  상자에서 무작위로 꺼낸 초콜릿을 입 안에 넣었더니 아주 쓰고 떫은맛이 난다면? 정답은 퉤, 뱉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초콜릿들이 많이 있는데 굳이 맛없는 초콜릿을 음미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그 초콜릿밖에 없는 것처럼 한사코 그것만을 고집하며 힘들어했던 것 같다. 불행하게 만드는 초콜릿이라면 당장 뱉어버리고 다른 초콜릿을 찾아 나서야 한다. 저절로 인상이 써지는 쓰디쓴 초콜릿을 골랐다고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달콤한 맛, 진한 녹차맛, 새콤한 레몬맛, 그윽한 커피맛, 수많은 초콜릿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이 책의 제목은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그리고 당신이 잘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막연한 응원에 슬그머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나를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말에 마음이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책에서 건네준 사소하거나 큼직한 조언에 마음을 흠뻑 써볼 계획이다. 근사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던 작가처럼, 나 역시 정성스럽게 내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언젠가 우아하고 품위 있고 좋아하는 것을 실컷 하는 할머니가 되어 마흔 살의 젊은이들에게 옛이야기를 건네는 나를 상상하면서.




*이미지 출처: 프리픽(상단), 픽사베이(하단)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은 문장을 중심으로 생각을 풀어 보았습니다.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그것들을 글로 쓰면서 느끼는 것이 또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이 하나 남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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