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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봄 Jan 11. 2021

"여보, 나 피아노 좀 가르쳐줘."

잊고 있던 꿈의 조각을 잇는 중입니다.



“김보보, 나 피아노 가르쳐줘. 한 곡만 죽어라 파다 보면 그럴듯하게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혹한에 코로나까지 창궐해 집에서 세 식구가 꼼짝 않고 있던 크리스마스 오후에 남편이 말했다.



“그래? 그럼 지금 하자! 근데 뭘 쳐보면 좋을까?”

“시작은 크리스마스니까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때?”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우리 모두가 그랬듯이,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이면 동네 아이들 모두 노란색 직사각형의 피아노 학원 가방 하나씩은 들고 다녔기에, 남편도 피아노가 아주 처음은 아니었다. 허나 신은 우리에게 망각의 은사를 주셨고, 인간의 두뇌는 쓰지 않는 능력 따위 깔끔하게 포맷해버리는 명석함을 가졌기에, 그의 머릿속에도 손끝에도 피아노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악보를 읽을 거라곤 애당초 기대도 안 했고. 하여 김보보의 ‘구전 도제식 야매 피아노 강습’이 시작되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어차피 익숙한 노래이니 멜로디 따라 계이름을 불러주며 손가락과 건반을 대응시켜주는 것. 나약하고 아둔한 왼손은 거들 필요도 없지. 우리는 오늘 오른손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자, 이제 시작!  



“쏘오올 라솔 미이이, 쏘오올 라솔 미이이”  



갈 곳 잃은 손가락들이 잠시 방황하는 것 같더니, 금세 제자리를 찾는다. 구부정하게 굽은 그의 등 위로 돌고래가 물을 뿜듯 신남이 솟아난다. 그렇게 단 15분, 남편은 한 곡의 멜로디를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이제 음악을 연주해 보자.



“옆으로 좀 가 봐!” 남편의 왼편에 나란히 앉았다. 작지 않은 피아노 의자가 비좁다. 조용하고 나지막하게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15분 동안 연습한 멜로디가 조심스럽게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다. 동시에 나는 그의 왼편에서 낮은 음역대로 반주를 넣어준다. 단 15분 만에 우리는 ‘함께’ ‘연주’를 하고 있었다. 꽤 그럴듯하고 근사한 소리가, 서툴지만 풋풋하고 따뜻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파동만큼 남편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순식간에 끝난 짧은 연주, 이게 뭐라고 땀이 송골송골해진 남편은 팔에 소름이 돋았다며 너스레를 떤다.


30년 넘은 나의 피아노, 요즘 고생이 많다.



나에게도 사실 로망이었다.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것은.  



모두가 피아노 학원에 드나들던 그 시절, 나도 그 ‘모두’ 중 하나였다. 모차르트는 아니었지만 동네에선 꽤 눈에 띄는 편이어서 일찌감치 전국 단위 콩쿠르에도 나가게 되었고. 하지만 그래 봐야 열 살도 안된 꼬꼬마였기에 대회를 앞두고 똑같은 곡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하고 연습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대회 참가자들은 주말에도 학원에 나와 연습을 해야 했는데, 피아노 한 대가 간신히 들어가는 작은 방에 각자 문을 닫고 들어가 연습하던 그 시간들은 지루하기도, 외롭기도, 괜히 살짝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다. 그때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연탄곡’으로 대회에 나간다던 4학년, 6학년 언니 둘이었다. 둘이 함께 하는 연주라니, 게다가 연습실에도 혼자가 아닌 둘이 들어간다니! 늘 사이가 좋아 친자매 같았던 언니들은 눈길만 스쳐도 까르르 까르르 웃었고, 두 손이 아닌 네 손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훨씬 더 풍성하고 화려했다. 아무리 강심장이어도 무대에 오르기 직전엔 덜덜덜 손이 떨리고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게 마련인데, 언니들은 둘이 마주 서서 손을 꼭 잡고 흔들며 서로의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렇게도 부럽고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기회. 시간이 훌쩍 흘러 엄마가 되고, 아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제 자식은 가르칠 수 없다 하였던가. 아이는 역시나 엄마와의 피아노 놀이에 심드렁했고 나의 욕심으로 아이를 흔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마음을 거두었다. 그런데 상상도 못 한 곳에서 파트너가 나타나다니. 어라? 게다가 가르쳐주면 금방금방 잘 따라 한다니. 횡재다.


2015년 4월, 이 때만 해도 나는 딸과 함께 하는 연주를 꿈꾸었지... 이젠 다 지난 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연주’를 하게 된 남편은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어서 나의 이 훌륭한 연주를 촬영해 널리 알리거라’며 들썩거렸고, 난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곡 더?”



엄마 아빠가 나란히 앉아 연주를 하고 있자, 아이가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온다. “우와! 아빠도 피아노 잘 치네!” 딸의 칭찬까지 들은 남편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고, 이제 ‘베토벤’을 좀 쳐 봐야겠다며 ‘합창’을, 다음은 ‘비창 2악장’을 외쳤다. 베토벤 님께서 들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환상 -혹은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이었지만, 다행히 그분은 듣지 못하시니 우리만 즐거우면 됐다. 남편이 어디 가서 묘령의 여인에게 피아노 치며 사랑고백을 할 거 아니라면 그의 곁엔 항상 내가 있을 테니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재미없는 바이엘과 기교뿐인 체르니, 멜로디 없는 하농을 억지로 쳐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에게 피아노는 그저 함께하는 아름답고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키득키득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그렇게 연말까지 하루 15분, 세 곡을 마스터한 우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무언가 어설프지만 언뜻 들으면 또 그럴듯한 한 곡을 완성했다. 이른바 <고요한 밤의 슬픈 합창>.



30년 넘게 잊고 있던 꿈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롭게 싹을 틔운 순간, 행복했다.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터지는 짝꿍과 함께 호흡을 맞추어 연주하는 꿈을 꾸었던 나와, 최소한 한 곡 정도는 그럴듯하게 피아노를 연주해 보고 싶었던 남편의 꿈이 손뼉을 ‘짝!’하고 마주치던 그 순간. 어쩌면 그저 지루하고 평범하게 흘러갔을 어느 평범한 오후에 소담스런 꽃 한 송이 무심하게 툭 떨어진 것 같은 그 느낌. 그 짧고 단순한 곡을 연주하는 몇 분 사이, 서로의 지난 시간들이, 또 지금 이 순간들이, 아스라이 얽히고 겹쳐지며 반짝였다. 우리는 그렇게, 잊고 있던, 이루지 못한 꿈의 조각들을 함께 잇고 붙이고 채워가며 오늘 이 순간을 예쁘게 빚어냈다.  



“우리나라엔 3대 피아니스트가 있지. 조성진, 손열음, 그리고 김보보.”라고 엄청 큰 소리로 웃지도 않고 이야기 하는 나의 귀여운 남편은 지난 주말에도 슬그머니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장모님 오시면 연주 한 번 해 드려야 한다며 건반에 코가 닿을 듯 구부정하게 앉아 어설프게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에 '쿱!’하고 웃음이 터진다. 아둔하고 나약한 왼손을 슬그머니 건반 위에 얹어 보는 남편은 아마 혼자서 좀 더 큰 꿈을 꾸고 있나 보다. 아무렴 어떤가. 믿거나 말거나 우리나라 3대 피아니스트 중 한 분이 당신의 스승님인 것을. 나를 믿고 그대를 믿으며 우리 함께 나서보자. 함께라면 두려울 것도, 못할 것도 없는 김보보와 이보보의 새로운 놀이는 손가락보다 한 박자 앞서 흘러나오는 콧노래처럼, 이제 시작이다. 서로의 꿈을 안고.


연주 끝에 "좋았어!"를 자신있게 외치는 이보보, 저 아래 왼손은 어쩐지 '모히또 가서 몰디브를 마셔야 할 것만 같은' 모양새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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